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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선수' LG 신재웅, "다시 잠실구장 마운드에 서고 싶다"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1-08-16 14:44


지난 2006년 8월11일 잠실 한화전에서 1안타 완봉승을 거둔 뒤 포수 최승환(현 두산)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는 신재웅(오른쪽)의 모습. 스포츠조선DB


지난 5월15일, LG 외국인투수 주키치는 목동 넥센전에서 1안타 완봉승을 거뒀다. 목동구장 기자실에는 주키치와 함께 한 선수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주키치 이전 LG 소속으로 1안타 완봉승을 거둔 선수, 바로 LG 좌완투수 신재웅이 그 주인공이었다.

신재웅은 지난 2006년 8월11일 잠실구장에서 한화를 상대로 1안타 완봉승을 거뒀다. 노히트노런을 눈 앞에 뒀지만, 9회 한화 신경현에게 좌전 안타를 맞았다. 데뷔 첫 선발 등판에 1안타 완봉승, 충격적인 데뷔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신고선수 신분으로 LG 2군에서 뛰고 있다. 5년이란 시간, 신재웅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신재웅은 마산고-동의대를 거쳐 2005년 2차 3라운드로 LG에 지명돼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 해 26경기서 중간계투로 1승 2홀드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인 그는 2006시즌 전 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 볼티모어 투수코치였던 레오 마조니가 '메이저리그 선발감'이라고 극찬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는 그해 22경기서 1승2패 1홀드에 방어율 4.61을 기록한 뒤 두산으로 이적했다. 당시 두산이 FA(자유계약선수) 박명환의 보상선수로 그를 지목했던 것. 신재웅은 "그땐 정말 당황스러웠다. 두산에서 유격수가 필요하다는 소리가 있어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코치님들이 '재웅아, 너 두산 간다며?'라며 장난을 치기는 했다. 그런데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니 두산 매니저한테 전화가 와있었다. 농담이 현실이 돼버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 2007년 1월, 박명환의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이적한 뒤 새 유니폼을 입고 사진촬영에 응한 신재웅. 스포츠조선DB
사실 야구선수에게 팀을 옮긴다는 것은 새로운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신재웅 역시 그랬다. 당시 상황에 대해 묻자 그는 "두산 코칭스태프에서 '4.5선발도 가능하다'며 열심히 해보자고 했다. 왼손투수가 적어 나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적 뒤 새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힘차게 공을 뿌렸다. 하지만 의욕이 지나쳤던 것일까. 스프링캠프 도중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신재웅은 "당시 두산의 전훈 장소였던 일본 쓰쿠미는 다른 곳에 비해 조금 추웠다. 쌀쌀한 날씨에 너무 무리해서 공을 던졌던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금방 끝날 것만 같던 통증은 시즌 내내 계속됐다. 마운드에 서보지도 못한 채 끝난 2007시즌. 결국 신재웅은 구단과 상의 끝에 군입대를 결정했다.

고향인 마산에서 공익근무를 시작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2008년 말. 두산은 그를 방출했다. 소집해제 후 건강한 어깨로 복귀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였다. 갑작스런 방출 통보에 황당하고 속상할 뿐이었다. 상심하고 있던 그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차명석 LG 투수코치였다. 차 코치는 그에게 "어차피 다시 야구할 것 아니냐. 다른 팀 갈 생각하지 말고 LG로 돌아와라. 구단에 말해놓을테니 열심히 몸 만들고 있어라"고 말했다. 신재웅은 이를 악물고 운동을 시작했다. 1년을 푹 쉬고 나니 어깨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평일에는 퇴근 뒤 집 근처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에 매달렸고, 주말에는 모교인 마산고에서 후배들과 함께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2010년 4월, 소집해제된 직후 홀로 상경했다.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었지만, 몸은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서울에 연고가 없다보니 지낼 곳도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친한 고향 선배가 도움을 줬다. 선배 집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재활센터에 다닐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5개월여의 시간이 또 흘러갔다. 2010시즌 종료 후 진주와 남해 캠프에서 계속 테스트를 받았다. 캠프가 끝난 뒤 서울에 올라온 뒤에야 신고선수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합류한 LG 2군. 4년 만에 돌아온 프로무대는 모든게 낯설기만 했다. 입단 동기들은 야구를 관두거나 1군에 있었다. 적응이 힘들었던 그에게 힘이 된 건 박명환이었다. 신재웅은 "FA와 보상선수로 특별한 인연을 맺어서인지 명환이형이 제일 잘 챙겨줬다. 모르는 후배들 밖에 없어 적응이 힘들었지만 큰 힘이 됐다"며 미소지었다.

지난 5월 주키치가 1안타 완봉승을 거둔 이후, 그는 선수단 사이에서 또다른 화제가 됐다. 후배들은 "형, 정말 1안타 완봉승 했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라며 앞다퉈 그의 영웅담을 듣길 원했다. 신재웅은 "이제 다 옛날 일인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사실 그때 1군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신재웅은 현재 직구 최고구속이 143㎞까지 올라왔다. 한창 때의 평균구속 정도다. 그는 "예전 몸상태의 80~90%까지 올라온 것 같다. 시즌 초반에는 내 공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별볼일 없는 투수였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자신감이 붙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2군에서 신재웅을 지도하고 있는 차명석 코치는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 4년여의 공백이 크긴 크다. 마음 같아선 정식 선수로 전환돼 9월에 1군서 경험을 쌓으면 좋을 것 같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일 5년여 만에 잠실구장 마운드를 밟았다. 두산과의 2군 경기서 9회 팀의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세 타자를 깔끔하게 막았다. 신재웅은 "5-1로 앞선 상황이었지만, 가슴이 벅차올랐다. 잠실구장에 다시는 못 설 것만 같았다. 이제는 1군에 올라 수많은 관중 앞에서 잠실구장 마운드에 서고 싶다. 예전 기억을 살려서 호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신재웅의 지난 2006년 투구 모습. 스포츠조선DB

지난해 진주 마무리캠프에서 테스트를 받을 당시 튜빙기로 몸을 풀고 있는 신재웅. 사진제공=LG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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