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성유전체 시계(epigenetic clock)를 이용해 노화 정도와 향후 진행될 속도를 예측하는 연구가 한국에서도 본격화되고 있다.
후성유전체 시계란 게놈의 여러 다른 염색체와 유전자에서 DNA 메틸화(methylation) 수준을 측정해 나이를 예측하는 수학적 모델이다.
DNA 메틸화란 메틸기가 DNA 분자에 화학적 공유결합한 것으로, DNA 기저 염기서열을 바꾸지 않고도 유전자의 기능을 수정할 수 있다. DNA 메틸화는 누적된 생활습관과 환경의 요인에 의해 진행된다. 안정적인 유전자 표현형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암 같은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고, 거꾸로 질병 발생을 막을 수도 있다.
시선바이오 박희경 대표는 "시선바이오는 2019년부터 유력한 후성유전체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이 과정에서 확립된 진단기술을 활용해 질병의 조기진단, 치료 예후 예측, 건강상태·노화 가속 등에 대한 평가할 수 있는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KAI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KAI에는 405개의 노화 관련 후성유전체 바이오마커가 담겨져 있다. 이 중 341개는 이미 기존 연구를 통해 확립된 것이며, 64개는 시선바이오가 자체 발굴한 것이다.
KAI의 바이오마커는 현재의 건강 상태 지표를 말해준다. KAI가 예측한 나이가 법적 나이보다 많게 산출되면 노화 진행 속도가 빠르고, 반대로 적게 나오면 건강관리가 잘 돼 노화 진행 속도가 느리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시선바이오가 선정한 바이오마커의 다양성과 노화 예측 정확도는 국내 최고 수준이며, 세계적 수준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의 자이모리서치(Zymo Research)는 타액 샘플을 이용한 DNA 메틸화 분석 기술을 개발해 현재 노화 속도를 예측하는 myDNAge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소재 에벌리웰(EverlyWell)도 비슷한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나아가 후성유전학 시계를 활용해 현재의 건강상태, 질병 발생 가능성, 치료 결과의 예측 등을 확인해주고 그에 대응해 개인맞춤형 운동치료, 식이요법, 명상, 의료서비스, 건강기능식품 등 헬스케어 제품을 추천 및 권고해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영국 런던의 NAD클리닉(NADclinic), 40개국에 1만여 명의 의사 회원을 두고 있는 영양유전체학(Nutrigenomics) 전문기업 뉴트리제노믹스(Nutrigenomix) 등이 이런 업체들이다.
KAI와 같은 후성유전체 기반 시계로 노화 속도가 지연됨을 증명하는 논문도 다수 발표됐다.
운동과 생활습관 변화, 메트포르민과 비타민 D 보충제 복용 등이 노화 가속 시계 (Horvath's DNAmAge, DNAm GrimAge 시계 등) 기준으로 생물학적 연령을 감소시켰음을 보여준다는 내용이다.
시선바이오는 DNA를 추출·치환·고정하는 화학물질로 바이설파이트(Bisulfite)를 쓰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이 물질을 쓰지 않는 전(前) 처리 과정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기존 바이설파이트 전처리는 DNA 손상이 야기되고, 정확도 및 재현성이 떨어지며, 위양성률이 높게 나오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시선바이오는 이를 말끔하게 극복했다.
특히 시선바이오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Epi-sPNA는 안정성이 높은 PNA(인조 DNA)에 메틸화된 C(시토신)와 선택적인 소수성 결합을 하는 특수 작용기를 붙인 것으로, 가장 흔하게 DNA 메틸레이션이 일어나는 C-G(시토신-구아닌)간 서열에서 얼마나 많은 메틸화가 이뤄졌는지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시선바이오는 지난해 5월 서울대 의대와 연구협약을 맺고 후성유전체 기반 정밀의료 구축을 위한 초기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다중 암진단 및 약물 반응성 예측 검사법(Epi-TOP MPP Assay Panel)과 린치증후군 고위험군 선별검사법(Epi-TOP mMLH1 detection kit) 등 후선유전체 기반 진단법이 한창 개발 중이다.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에 항암제인 테모졸로미드가 환자에게 적합한지 미리 판단해주는 'Epi-TOP mMGMT Detection Kit'가 2021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체외진단 3등급 허가를 받음으로써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박희경 대표는 "전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잘못된 생활습관의 누적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후성유전체가 변화하고 이로 인해 노화가 가속되고 질병이 초래될 수 있다"며 "이런 메커니즘을 수치적으로 평가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헬스케어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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