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파워가 대단하다. 식품·유통업계를 '요리조리' 요리한다. 유명 셰프가 방송에서 선보인 요리법이 온라인을 강타하고, 관련 재료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업계에선 '메르스가 죽인 소비심리를 셰프들이 살려내고 있다'고 하기까지 한다. 이 때문에 스타 셰프의 일거수일투족에 식품·유통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며 뒤따라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 등 3대 할인점과 SSM 판매량을 살펴보면, 고등어캔은 무려 10~20배, 꽁치는 4배 이상 팔렸다. 고등어캔의 지난 6월 일판매 평균은 818개. 그런데 방송이 나간 직후인 지난달 8일 1만2588개가 팔리더니 주말이 시작되는 11일엔 무려 1만9475개까지 팔려나갔다. 일부 네티즌은 할인점의 꽁치·고등어통조림 매대가 텅텅 비어있는 사진을 찍어 SNS로 공유하기도 했다.
동원F&B는 예상치 못했던 주문량을 감당하기 위해 생산량을 평소의 두 배로 늘려야했다. 그 인기는 여전해 올해 7월과 지난해 7월 판매량을 비교했을 때, 꽁치통조림은 238%, 고등어통조림은 326% 판매량이 늘어났다.
이뿐 아니다. tvN '집밥 백선생'이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등에서 백종원이 새로운 레시피를 선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나섰다. 백종원의 만능간장 레시피가 공개된 지난 2일부터 일주일 동안 CJ몰 애플리케이션(앱) 간장 매출은 2배 넘게 증가했다.
이처럼 스타 셰프들의 영향력은 즉각적이고 강력하다. 백종원은 물론이고 최현석·샘킴·정창욱 등 '냉장고를 부탁해'의 스타 셰프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며 전 방위적으로 유통채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 셰프는 아니지만, 차승원·이서진 등 tvN '삼시세끼'에서 다채로운 메뉴를 소화해낸 남자 배우들의 영향도 크다.
온라인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작년 동기 대비 7월 양념과 조미료 매출은 48%나 늘어났다. 주방 조리도구 (냄비, 프라이팬, 국자 등)는 35% 상승률을 기록하고, 남성용 앞치마는 무려 71%나 매출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같은 열풍은 프리미엄 주방용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독일 주방용품 전문업체인 휘슬러가 '홈스토랑(home+restaurant)의 구현'을 표방하면서 내놓은 셰프컬렉션의 올해 6월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30%나 증가했다. 휘슬러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남성들의 구매율이 부쩍 높아졌다"며 "주방도구의 기능에 관심을 갖는 남성들은 프리미엄급이라도 완벽 조리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고 관련 시장에 부는 '남(男)풍'의 열기를 전했다.
셰프 광풍 왜? 한 끼라도 그럴싸하게 먹겠다
이같은 쿡방(요리하다는 'cook'과 방송의 합성어)과 셰프 인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장기적인 경제 불황에서 찾을 수 있다. 목돈이 들어가는 일은 엄두도 못내는 요즘 '3포 세대(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는 생활 속 작은 사치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따라서 스타 셰프들이 만들어내는 평범한 듯하면서도 화려한 한 끼 식사는 주부들 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노소를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1인 미디어로 활용하는 요즘 세대의 특성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자신만의 콘텐츠로 온라인 공간에서 주목을 받는 일이 요즘 네티즌들에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상의 목표 중 하나다.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백종원의 레시피는 특히 이런 면에서 매번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면서, 방송 직후 어김없이 포털 검색어 인기 순위에 오르고 있다.
이 가운데 1인 가구의 증가 또한 주요 원인으로 언급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7.1%에 달한다. 2035년 무려 34.35%가 될 것으로 보이는 1인 가구는 먹는 것에 돈을 많이 쓴다. 201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전체 지출 중 식료품이 31. 2%를 차지했다.
따라서 간편 가정식 HMR((Home Meal Replacement) 시장은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LIG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HMR 시장 규모는 1조7000억원대로 전년동기 대비 약 31% 성장했고, 올해는 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재료와 소스, 조미료, 주방도구 등에 대한 관심과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다보니, 한 끼라도 그럴듯하게 차려먹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삼시세끼'나 '꽃보다 남자'에서 서툰 칼질을 보여준 이서진이나,'삼시세끼-어촌편'에서 전문가 수준의 요리 솜씨를 자랑하던 차승원을 통해 요리에 대한 인식에 바뀐 점도 크다. 과거 요리가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이었다면, 이제 음식은 유행이고 스타일이 된 것이다.
이에 신세계·현대·롯데·갤러리아 등 주요 백화점은 최근 잇달아 프리미엄 식품관을 확장하거나 새로 열고 있다. 지난해 주요 점포 지하 식품관을 프리미엄관으로 리뉴얼한 신세계는 지난 9일 SSG 푸드마켓 서울 목동점을 오픈, 일주일간 일매출 1억원 이상을 올리며 목표치를 초과달성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10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유치한 이탈리아 프리미엄 식품관 '펙' 또한 반응이 좋다.
식품·유통업계 경쟁 '후끈'…꿩 먹고 알 먹는 CJ
스타 셰프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업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동원F&B는 '집밥 백선생' 방송 이후 꽁치와 고등어 통조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이를 온오프라인 마케팅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자사 블로그나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에 방송에 나온 레시피들을 소개하는 한편, 꽁치·고등어 통조림 샘플링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온라인몰인 '동원몰'에서도 회원들에게 보내는 DM(Direct Mail)을 통해 해당 방송의 레시피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형마트나 오픈마켓 등도 마찬가지. 쿡방 관련 기획전을 잇달아 마련하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최현석을 아예 모델로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업계는 특히 CJ의 영리한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요리 전문 프로그램인 올리브 TV는 물론 집밥 바람을 불러일으킨 쿡방의 대표주자 '삼시세끼'나 '집밥 백선생'은 모두 CJ E&M이 제작했다. CJ E&M은 이들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계열사의 음식 재료를 등장시키거나, 사후 마케팅과 결합시키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물론 지나친 PPL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CJ제일제당의 즉석밥인 '햇반'이 CJ E&M의 여러 방송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힘들다. 또한 스타 셰프의 과도한 노출에 대한 피로감도 예상된다. 여러 식음료 브랜드 광고를 동시에 찍고 있는 스타 셰프의 경우,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낳고 있다.
그러나 "집밥 열풍과 쿡방의 인기가 더해지면서 스타 셰프가 태어났다고 볼 수 있는 만큼 그 인기 또한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 업계 관계자는 "꺼진 소비심리를 되살리기 위해선 관련 업계에선 현재의 스타 셰프 이슈를 어떻게든 이어나가고자 할 것이다. 특히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CJ는 상대적으로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상희 기자 nowat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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