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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레전드 곽경근, 연봉없이 팀 이끄는 사연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2-03-19 14:15 | 최종수정 2012-03-19 15:49


곽경근 부천FC 감독. 사진제공=부천FC

챌린저스리그(3부리그) 소속 부천FC와 경찰청의 2012년 FA컵 1라운드 경기가 열린 18일의 서울 효창운동장.

북쪽 골대 뒤에서 부천을 응원하던 팬들은 눈을 의심했다. 김두현 염기훈 등이 버틴 강호 경찰청을 상대로 한 부천 선수들의 플레이가 심상치 않았다. 빠르면서도 정확한 쇼트패스, 중앙을 거쳐서 나가는 플레이, 상대의 페널티지역 앞에서의 위협적인 삼각패스 등을 시도했다. 팬들은 전율을 느꼈다. 부천FC는 2006년 부천SK가 제주로 연고이전한 뒤 팬들이 합심해 2008년 만든 구단이다. 이런 부천팬들 앞에 선수들이 펼치는 플레이는 바로 부천SK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 보여주었던 '니포 축구'였다. 부천 팬들은 신나서 "부천"을 연호했다. 이어 챌린저스리그에서 '니포 축구'의 향기를 느끼게 만들어준 부천 감독의 이름도 소리높여 불렀다.

"곽경근! 곽경근!"

곽 감독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부천SK의 간판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2003년 부산으로 이적해 2004년 은퇴할 때까지 K-리그 통산 212경기 출전에 36골 23도움을 기록했다. 1990년대 후반 A대표팀에서도 뛰었다.

곽 감독이 부천과 다시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부천의 감독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왔다. 간판 선수였던 곽 감독의 방문에 부천 운영진은 놀라고 기뻤다. 하지만 이내 걱정이 앞섰다. 곽 감독에게 걸맞는 대우를 해줄 수가 없었다. 팬들이 만든 팀인만큼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매년 이곳저곳에서 스폰서를 얻어 겨우 살림을 꾸릴 정도다. 곽 감독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많은 연봉을 줄 수가 없습니다. 수당도 많지 않습니다. 실망하시더라도 그것이 지금 부천의 현실입니다."

얘기를 들은 곽 감독은 빙긋이 웃었다. 단 한마디만 했다. "저 돈 보고 여기 온 거 아닙니다." 곽 감독은 부천 중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축구도 부천에서 시작했다. 현역 은퇴 후 여의도고 감독을 하면서도 고향을 잊지 않았다. 곽 감독에게 부천 감독은 돈이나 명예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고향을 위한 봉사 자리였다.

11월 계약서에 사인했다. 연봉은 받지 않기로 했다. 수당이 있지만 많지 않았다. 여의도고 감독직은 겸임하기로 했다. 곽 감독은 사비를 털어서 전국을 돌았다. 팀에 도움이 될만한 선수들을 데려왔다. 2월 첫 훈련을 가졌다. 팀 사정상 일주일에 2번 훈련했다. 선수들에게 '니포 축구'를 심었다. "공은 사람보다 빠르다. 정확하고 빠른 패스가 우리 팀의 핵심이다."

3일 천안 축구센터에서 열린 천안FC와의 2012년 다음(Daum) 챌린저스리그 1라운드 경기는 테스트였다. 0대0으로 비겼지만 곽경근표 '니포 축구'의 가능성을 봤다. 경찰청과의 FA컵 1라운드는 도전이었다. 전반까지는 대등했다. 경찰청에 1골만 내주었다. 1.5군을 투입하며 여유를 부렸던 경찰청은 후반전에 김두현과 염기훈을 투입했다. 부천은 A대표팀급 선수들을 상대로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클래스의 차이를 넘지는 못했다. 여기에 체력 부족까지 겹쳤다. 결국 0대4로 졌다.


완패했지만 곽 감독은 인상 쓰지 않았다. 자신들의 축구가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더 큰 꿈을 꾸게 됐다.

"우리 부천의 축구가 올 시즌 챌린저스 리그 우승을 노릴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리그에 집중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K-리그까지 올라가 제패하는 꿈도 꾸겠습니다. 제가 그 꿈의 밀알을 심고 싶습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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