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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인천 문학구장.
김 감독은 "심 코치. 혼자 조용한 곳으로 가서 타순 좀 짜서 와"라고 했다. 심 코치는 "휴"하고 한숨을 쉬더니 타순 오더판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유가 있었다. 넥센은 지난 주 삼성과의 3연전에서 처참하게 당했다. 3경기 모두 완봉패를 했다.
그만큼 초조했다. 김 감독을 비롯한 넥센 선수단은 불명예 기록의 불안감이 휩싸여 있었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이닝 무득점 기록은 지난 1986년 청보가 가지고 있는 41이닝 무득점. 1986년 7월24일 잠실 OB전부터 7월 30일 인천 삼성전까지 기록한 불명예 기록이었다.
넥센은 이날 SK전마저 무득점에 그치면 '불명예 기록수립'의 사정권에 든다.
김 감독은 덕아웃에 찾아온 양상문 MBC스포츠+ 해설위원에게 "(심)재학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선수들에게 대구 원정때 호텔에서 외박금지까지 시켰다"고 했다. 선수들은 호텔 방 안에서 배트를 휘둘러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경기는 시작됐다. 1회 선두타자 송지만이 유격수 앞 내야안타를 치고 1루에 진루했다. 그러나 김민우의 2루 앞 땅볼과 유한준의 병살타로 득점기회는 무산됐다.
2회 1사 2루의 찬스도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경기 초반 득점찬스를 무산시키자 넥센 덕아웃은 더욱 경직됐다.
3회 선두타자 김민성이 들어섰다. 그는 볼카운트 1-1에서 SK 선발 이승호(37번)의 138㎞ 가운데 높은 직구를 그대로 잡아당겼다. 쭉쭉 뻗던 타구는 120m 좌중월 펜스를 그대로 넘어갔다.
37이닝 만의 첫 득점.
아이러니컬했다. 김민성은 올 시즌 122경기에 출전, 홈런이 단 3개밖에 없었다. 너무나 중요한 순간 홈런을 쳐냈다.
덕아웃에 있던 넥센 선수들은 '이제 됐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민성이 홈 플레이트를 밟고 덕아웃에 들어오자 넥센 선수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나 열광적인 세리머니는 없었다. 환영의 미소 속에는 안도감과 함께 쑥스러움이 숨겨져 있었다. 인천=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