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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 더 그라운드]'금남의 벽'을 허물다, IBK기업은행 숙소 탐방기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3-02-08 08:49


통상 여자 프로 팀 숙소는 '금남의 구역'이다. 감독조차도 여자 선수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허락을 받고 들어가는 곳이다. 30대 초반 미혼의 기자가 '금남의 벽'을 허물었다. 이번 시즌 프로배구 여자부에서 거침없는 선두를 달리고 있는 IBK기업은행의 숙소를 면밀히 들여다봤다. 탐방 전, 왠지 모르게 설레였다. '무색유취'인 남자 숙소는 많이 가봤지만, '유색향취'일 것 같은 여자 숙소 취재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수원 장안구 IBK기업은행 알토스여자배구단 숙소 탐방을 했다. 이소진이 그동안 모아온 만화 캐릭터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아파트 주민 여러분, 이제 저희 예쁘죠?"

기업은행 선수들의 숙소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였다. 이제 갓 두 돌을 넘긴 '막내 구단' 기업은행은 선수단 전용숙소와 체육관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불편을 감수하고 택한 것이 아파트였다. 코칭스태프를 비롯해 선수, 통역, 트레이너 등 20명 정도의 선수단이 뿔뿔이 흩어져 다섯 집 살림을 하고 있다. 198㎡(60평) 한 채, 165㎡(50평) 세 채, 79㎡(24평) 한 채로 구성돼 있다. 방의 크기대로 3인 1실, 2인 1실, 1일 1실로 배정됐다. 이 중 한 채는 선수 숙소 겸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느 외국인선수들이 그러하듯 기업은행의 알레시아도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 79㎡ 한 채에 혼자 살고 있었다. 이정철 기업은행 감독의 집은 '사랑방'이다. 거실에는 물리치료 기계와 매트가 놓여 있었다. 장소가 협소하다보니 감독의 집에 물리치료실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불편하지만, 가까워지는 기회도 된다"고 했다. 선수들이 경기에 패한 직후 물리치료를 위해 감독의 집을 찾는 것을 싫어할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감독과 선수들이 눈을 마주치면 가족처럼 금새 화가 풀리곤 한단다. 아파트의 매력이다.


수원 장안구 IBK기업은행 알토스여자배구단 숙소 탐방을 했다. 김희진이 본인의 방에서 보물처럼 아끼는 프라모델 건담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기업은행 선수들의 아파트 정착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2010년 11월 창단된 뒤 기업은행 기흥 연수원에 머물다 12월 초 아파트로 이사했다. 모두들 내 집처럼 편안하게 지낼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난관들이 너무 많았다. 일반 주민들이 이웃이다보니 항의가 빗발쳤다. '구단 버스가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올 경우 도로가 내려앉는다', '선수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타면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라는 등의 민원이 접수됐다. 이 감독은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내놓은 아이디어는 '융화'였다. 어차피 전용숙소가 생기기 전까지 살아야 할 곳이라면, 공인인 선수들이 주민들의 편의를 고려하자는 '생각의 전환'을 택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두 가지를 주문했다. '무조건 인사해라 10층, 11층에 사는 선수들은 계단으로 다녀라.' 또 금요일마다 장이 서면 경기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얼굴을 내비치며 아파트 주민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여기에 주민들에게 가장 크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성적'이었다. 지난시즌 4위에 머물렀지만, 올시즌은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2위인 GS칼텍스가 승점차를 좁히지 못한다면, 5라운드에서 정규리그 조기 우승도 가능한 상황이다. 이렇게 성적이 좋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마음도 녹아내렸다. '제2의 김연경'이라고 불리는 센터 김희진은 "잘 생겼다"며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이웃과 가까워진 거리를 피부로 느낄 때는 웨이트 훈련을 할 때다. 선수들은 전용 훈련장이 없어 장안구청 내 웨이트장에서 훈련한다. 일반인들과 함께 섞여 훈련하다보니 불편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주민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 선수들이 너무 많아 혼잡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적이 좋자 주민들의 불만이 사그러들었다. 모두들 선수들의 이름까지 외울 정도로 골수 팬이 됐다. 이젠 선수들이 있으면 혹시 운동에 방해가 될까 피해주기도 한단다.


수원 장안구 IBK기업은행 알토스여자배구단 숙소 탐방을 했다. 아파트 숙소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선수들.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여자 선수들, 집에선 무엇을 할까

이소진 정다은 김민주 박정현 성리사(통역사) 안지은(트레이너)이 사는 집이 첫 탐방 장소였다. 첫 느낌은 실망이었다. 아기자기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실은 밋밋했고, 썰렁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방은 달랐다. 침대와 책상 등 가구는 별로 없었지만, 취미생활로 꾸며진 부분과 팬들의 선물로 방이 꽉 차 보였다. '미녀 세터' 이소진은 취미인 만화 캐릭터 인형을 모아 방을 화사하게 꾸몄다. 김희진은 갖가지 프라모델들을 만들어 방을 장식했다. 레프트 윤혜숙은 캐릭터 그림 그리기로 집안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식당이 있긴 하지만, 선수들이 직접 간단한 요리를 해먹기도 한다. 라면부터 볶음밥, 떡볶이 등 다양한 요리가 탄생한다. 윤혜숙과 박정아는 소문난 요리사다. 쿠키와 머핀을 잘 굽는다. 세터 이효희는 이날 취재진을 위해 파전을 직접 만드는 솜씨를 발휘했다.

청소는 각자 알아서 한다. 방마다 서열이 있기 때문에 각자 맡은 분야가 있다. 그러나 유독 청소가 안된 방이 눈에 띄었다. 박경낭-김세련의 방이었다. 식당으로 이용되는 주방 옆방이었다. 김세련은 "식당이라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거려 가장 지저분해진 것 뿐"이라며 해명했다.

수원=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수원 장안구 IBK기업은행 알토스여자배구단 숙소 탐방을 했다. 이효희가 동료들을 위해 직접 간식을 만들어줬다.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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