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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둘은 서로 의지하며, 패럴림픽 은메달을 합작했다.
정호원와 강선희는 6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1에서 열린 대회 보치아 혼성페어 결승에서 홍콩에 4엔드 합계 3-5(0-3 3-0 0-1 0-1)로 석패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선수단은 2인조 경기인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기대했다.
정호원이 개인전 금메달, 강선희가 개인전 동메달을 따내면서 기대감은 한껏 커졌다.
하지만 이번 대회 마지막 경기, 마지막 엔드(4)에서 실수가 나오면서 고개를 떨궜다.
돌이 되기 전 당한 사고로 뇌병변 장애가 생긴 정호원은 중학교 1학년 때 보치아를 시작했다.
보치아는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스포츠로, 패럴림픽만 있고 올림픽에는 없다.
선수들은 가로 6m, 세로 12.5m 크기의 경기장에서 6개의 빨간색 공과 6개의 파란색 공을 표적구에 던지거나 홈통을 이용해 굴려 승부를 가른다.
각 엔드 종료 시점에서 상대보다 가깝게 던진 공 개수대로 1점씩 얻는다.
정호원은 "겉보기에는 단순한 경기 같지만 실제로는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힘 조절과 집중력 등 고도의 세밀한 조절이 필요한 운동이어서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정호원은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부터 꾸준하게 패럴림픽에 참가해 메달을 따왔다.
개인전 금메달에 이어 이날 혼성 페어에서 은메달을 추가하면서 패럴림픽 통산 메달은 8개(금 4개, 은 3개, 동 1개)로 늘었다.
결승전이 끝나고서 정호원은 "마지막 던진 공 실수가 너무 아쉽다"면서 "대회 전에 누나(강선희)에게 금메달을 따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안 됐다"라면서 거듭 아쉬움을 곱씹었다.
그는 "누나가 꼭 다음 대회(2028 로스앤젤레스 패럴림픽)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형에게는 대회 기간 내내 연락을 하지 않을 정도로 대회에 집중했던 그는 "이제 어머니께 전화해서 건강하게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1977년생인 강선희는 다소 늦은 나이에 보치아에 입문했다.
2000년 교통사고로 지체 장애 1급을 받은 강선희는 사회복지사를 준비하다 우연히 보치아를 접했고, 강한 매력에 이끌려 2017년에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강선희는 빠르게 성장했다. 입문 2년 만인 2019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뽑혔다.
2020 도쿄 패럴림픽 출전권은 획득하지 못했으나, 끊임없이 훈련하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선 정호원과 페어 종목 금메달을 합작했다.
강선희는 파리 패럴림픽에서도 정호원과 함께 페어 종목 은메달을 따냈다.
그는 "보치아를 시작한 뒤에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아지며 '밝은 척'이 아닌 진짜 마음까지 밝은 성격으로 변했다"라고 밝혔다.
파리 패럴림픽에서는 아쉬움과 뿌듯함이 교차했다.
강선희는 "처음 참가한 패럴림픽에서 개인전 동메달이라는 큰 성과를 내어 기쁘다. 하지만, 정호원이 2관왕을 하지 못해 아쉽다"며 "나 자신만 보면 만점인 대회"라고 돌아봤다.
이어 "정호원이 개인전서 금메달을 따주면서 한국 보치아의 패럴림픽 10연패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그나마 편하게 페어 경기를 했다. 정호원이 아니면 (페어) 은메달도 못 땄다"고 동료에게 공을 돌렸다.
강선희의 가족은 선수가 부담을 느낄까 봐, 대회 기간에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강선희는 "경기보조선수에게 들으니 가족들이 노심초사하면서 내 경기를 지켜봤다고 한다"며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직접 연락도 하지 못하더라. 가족들에게도 감사하다"고 했다.
cycl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