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브 잘해준 파트너에게 우승의 영광을 돌립니다." "선수는 역시 다르더라고요. 정영아 선수 덕분이죠!"
'도쿄패럴림픽 탁구 동메달리스트' 정영아(S5·서울시장애인체육회)와 'SK에코플랜트 탁구왕' 홍빛찬 프로가 '제1회 SK에코플랜트 어울림탁구' 깜짝 우승 직후 서로에게 공을 돌렸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SK에코플랜트 수송빌딩 다목적실에선 아주 특별한 탁구 대회가 열렸다. 서울시장애인체육회와 장애친화 대표기업 SK에코플랜트가 연말연시를 맞아 기획한 스포츠 재능나눔 행사. 'SK에코플랜트' '서울시장애인체육회' 소속 서울특별시 선수 8명과 '선착순' 참가의 행운을 거머쥔 SK에코플랜트 직원 8명이 한겨울 탁구 열기 속에 빠져들었다.
한영호 SK에코플랜트 부사장과 권익태 서울시장애인체육회 선수지원팀장이 후원물품 전달식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SK에코플랜트
'패럴림픽 3연속 메달리스트' 정영아와 '10년차 탁구동호인' 홍빛찬조의 우승 기념사진. 사진제공=SK에코플랜트
'데플림픽 챔피언'조 VS '패럴림픽 3연속 메달'조, 꿈의 결승전
SK에코플랜트는 2020년 7월 장애인선수단을 창단했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초과달성한 상황, 장애인에게 질적으로 더 의미 있는 직업군을 찾던 중 스포츠, 예술직군을 생각하게 됐다. 이후 서울시장애인체육회,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의 협업을 통해 '장애인 고용'의 신모델을 창출해냈다. 공단은 장애인선수 고용을 지원하고, 체육회는 선수 발굴 및 훈련과 육성, 회사는 급여 지원과 선수단 관리를 통해 완벽한 협업 체제를 구축했다. 사이클, 탁구, 펜싱, 태권도, 역도, 볼링, 육상 등 7개 종목 32명의 장애인 선수들이 SK에코플랜트 직원으로 마음껏 달리며 스포츠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지난해 도쿄패럴림픽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태권도 동메달리스트 주정훈 역시 SK에코플랜트가 자랑하는 '선수 직원'이다. SK에코플랜트는 고용과 지원에 그치지 않았다. 나눔과 어울림의 기업 문화를 확립하는 일에도 적극 나섰다. 지난 4월 삼성학교에서 장애인선수단의 첫 재능나눔 행사를 연 데 이어 12월 첫 탁구 어울림 대회를 기획했다.
'패럴림픽, 데플림픽 국가대표 사령탑' 박재형 서울시장애인체육회 탁구감독의 원포인트 레슨.
첫 탁구 대회를 위해 실력도 구력도 제각각인 8명의 직원들 옆에 '선수 선생님'들이 1대1 레슨에 나섰다. '패럴림픽, 데플림픽 금메달 명장' 박재형 서울시장애인체육회 탁구감독이 라켓을 처음 잡는다는 강민아 프로(신재생에너지 사업부) 옆에 붙어 기본기 스파르타 훈련에 나섰다. 1대1 맞춤형 레슨 직후 '장애인선수-비장애인 직원' 복식조의 제1회 SK에코플랜트배 어울림 탁구대회가 시작됐다.
예상대로 '사상 첫 데플림픽(청각장애인들의 올림픽) 남자단식 챔피언' 이창준(서울시장애인체육회 코치)과 '패럴림픽 3연속 메달리스트' 정영아, '꿈의 결승' 대진이 완성됐다. 정영아-홍빛찬(연료전지팀)조 대 이창준-최웅비(탤런트팀)조. 일진일퇴 시소게임은 기대 이상이었다. '비장애인 유니버시아드 메달리스트'인 이창준 코치의 유려한 드라이브를 정영아가 노련한 드라이브로 받아쳤다. '10년 구력' 홍빛찬 프로 역시 안정적인 리시브와 강력한 스매싱으로 맞섰다. 1게임을 먼저 내줬지만 내리 2게임을 잡아내며 '정-홍조'의 역전승. 승리의 하이파이브가 작렬했다. 정영아는 "파트너가 리시브를 너무 잘해줬다. 스매싱 한방도 있더라. 파트너에게 이 우승의 영광을 돌린다"며 활짝 웃었다. 홍 프로는 "국가대표 선수는 역시 다르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기술적으로도 배웠고, 이렇게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더니 "'디펜딩챔피언'으로서 내년에도 또 나오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준우승 후 이창준 코치와 파트너 최웅비 프로가 하트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카시아스두술데플림픽에서 한국 탁구 최초의 단식 금메달을 획득한 이창준 서울시장애인체육회 플레잉코치.
준우승 후 파트너 최웅비 프로와 하트 세리머니를 선보인 이창준 코치는 "제가 '스탠딩'이고 정영아 선수는 '휠체어'라 우리끼리도 이렇게 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 '어울림'도 새롭고 즐거웠다"며 웃었다. "새해엔 더 많은 재능나눔을 통해 탁구를 알리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박재형 감독 역시 "학생, 생활체육인 위주로 재능나눔을 해왔는데 대기업에선 처음"이라고 했다. "대기업 직원들과 함께하니 장애인체육에 대한 관심이 정말 커지고 있구나 실감이 된다"며 웃었다.
장애인스포츠선수단을 운영하는 SK에코플랜트의 HR 담당 한영호 부사장.
SK에코플랜트 직원들 "장애인선수 동료 자랑스러워요!"
SK에코플랜트 장애인선수단을 운영하는 HR 담당 한영호 부사장은 "처음엔 서먹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열띤 분위기에 놀랐다. 역시 운동을 같이 하면 금세 친해진다"며 미소 지었다. "장애인 선수들도 비장애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잘하는 운동을 마음껏 하는 가운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터가 필요하다. 어울림 세상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재능나눔의 이유도 분명했다. "선수단에게 성적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도 해야 한다. 같은 회사 직원, 동료로서 함께 하면서 소속감도 느끼게 되고, 직원들도 '우리 동료 중 장애인 선수가 있었지' 새삼 깨닫게 된다"면서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이 따로 필요치 않다고 강조했다. 한 부사장은 "장애인 선수, 예술인을 고용하는 대기업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장애인 고용에 이런 좋은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SK에코플랜트는 패럴림픽 등에 출전하는 장애인 국대들에게 사내 특별훈련 지원금도 지급하고 있다. 한 부사장은 "새해 항저우아시안게임서도 우리 회사 선수들이 좋은 성과를 내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스페셜올림픽, 패럴림픽을 꿈꾸는 '탁구선수' 이승호(27)는 2019년 SK에코플랜트에 입사한 3년차 직원이다. "취업 전엔 대회 나갈 때마다 돈이 많이 들어 힘들었다. SK에코플랜트 직원이 된 후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운동할 수 있어 감사하다. 심적으로도 안정이 됐다"고 했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한 첫 탁구대회, 그는 "동료들에게 탁구를 가르쳐줄 수 있어 기쁘다"며 웃었다.
이날 재능나눔 행사를 통해 탁구에 '입덕'했다는 SK에코플랜트 강민아 프로.
박재형 서울시장애인체육회 탁구감독에게 백드라이브 '원포인트레슨'을 받은 후 첫 경기에 나선 강민아 프로. 경기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탁구에 '입덕'했다는 강민아 프로는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딴 감독님, 선수들께 첫 기본기를 배우게 돼 영광이다. 엄마한테 자랑해야겠다"며 활짝 웃었다. "이승호 선수가 스포츠단 동료란 걸 알고 있었다. 작년에 주정훈 선수가 패럴림픽 동메달 딴 것도, 장애인선수단이 있다는 것도 회사 직원 모두 알고 있다. 우리 회사 활동 중 어딜 내놔도 가장 자랑스러운 게 바로 우리 선수단"이라며 마음을 전했다. "부서가 달라 교류할 기회가 없었는데 코칭도 받고 경기도 해보니 정말 좋았다. 앞으로 더 많은 직원들이 이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사업 담당자'인 김종철 서울시장애인체육회 대리 역시 대기업과 스포츠단체, 선수의 '윈-윈'에 남다른 보람을 전했다. "SK에코플랜트의 사례가 입소문이 나면서 장애인 스포츠선수를 원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 문화, 장애인 스포츠 문화가 변화하는 과정이 정말 뿌듯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