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진심인터뷰]'대한항공 입단,탁구신동'신유빈"왕관의 무게를 견딘다는 것"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0-02-07 05:47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는 말을 생각하게 됐어요"

대한민국 여자탁구 최연소 국가대표 '탁구신동' 신유빈이 6일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었다. '탁구 올인'을 위해 고등학교 진학 대신 실업행을 택했다. 1월 말 포르투갈 곤도마르 도쿄올림픽 단체전 예선에서 신유빈은 한국의 9회 연속 올림픽행을 이끌었다. '지면 끝장'인 프랑스와의 단두대 매치, '패자부활' 결승에서 세트스코어 2-1로 앞서던 4단식, 홀연 등장한 신유빈이 당돌한 드라이브로 한국 여자탁구의 '올림픽행'을 결정지었다. 3대0 완승 후 긴 팔을 쭉 펼쳐 환호하는가 싶더니 이내 꾹 눌러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양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을 보란듯이 이겨낸 '열여섯 강심장' 신유빈이 한국 여자탁구의 에이스로 거듭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최연소 국가대표, 최연소 실업행, 도쿄올림픽 티켓까지 '무한도전'의 아이콘이 된 신동, 에이스로 돌아온 신유빈이 말했다. "이런 시련이 제 앞에 놓인 건 다 이유가 있겠죠?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는 말을 생각하게 됐어요."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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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 대신 취업을 택한 이유

지난해부터 중학생 신유빈의 실업행은 스포츠계 핫이슈였다. 신유빈은 현정화, 유남규 등 탁구인들이 알아본 '재능'이다. 아버지 신수현 수원탁구협회 전무가 운영하는 탁구장에서 어릴 때부터 놀이하듯 탁구를 배웠다. 세 살때 탁구를 시작해 다섯 살 '꼬마 현정화' 이름표를 달고 나선 SBS 예능 '스타킹'에서 탁구신동으로 이름을 알렸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종합탁구선수권에서 대학생 언니를 꺾으며 뜨거운 화제가 됐다.

"탁구가 힘들어도 너무 재미있다"는 '유빈이'에게 탁구의 길은 운명이었다. 수원 청명중 2학년 때인 2018년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았고, 지난해 체코오픈 혼합복식에서 최연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m35의 탁구신동 '유빈이'가 1m67의 탁구 에이스로 폭풍성장했다. 친구이자 코치이자 멘토인 아버지는 "우리 유빈이 하고 싶은 거 다해"를 외치는 '딸바보'다. 어릴 때부터 성적이나 1등을 강요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골수염을 앓고 삼성생명 입단 4년만에 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던 아버지는 딸이 그저 행복한 탁구선수가 되기만을 바라왔다.

중학교 입학 후 신유빈은 진로를 고민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신 전무는 "늘 유빈이 하자는 대로 해왔지만, 그땐 말렸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가야 되지 않을까했더니, 유빈이는 단호하게 '안가도 돼'라고 하더라"고 했다. 신유빈은 "좋아하는 탁구를 더 잘하고 싶었다. 탁구는 훈련량이 정말 중요하다. 당장 실업언니들, 외국 에이스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수업 후 오후 3시부터 훈련을 시작해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잠도 부족하고 몸도 굳었다. 언니들보다 연습량도 모자라고, 어리니까 경험과 노련함도 당연히 부족하고…, 좋아하는 탁구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업행이 '공부를 안하겠다'는 선택은 결코 아니다. '탁구를 좀더 하기' 위한 선택이다. 대한항공과 계약하면서 구단도, 선수도 가장 먼저 챙긴 부분이 '공부'다. 신유빈은 "배우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고 했다. "우선은 영어와 역사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영어부터 배우고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도 배우고 싶다"며 웃었다. 대한항공은 신유빈을 위한 1대1 맞춤형 레슨을 지원할 예정이다.

박진성 대한항공 스포츠단 사무국장은 "신유빈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탁구 실력뿐 아니라 그 나이에 갖춰야 할 기본 소양과 바른 인성을 고루 갖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 이라고 약속했다.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기쁨 주고, 나눔 아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포르투갈 곤도마르 도쿄올림픽 단체전 예선 16강 남북전(1대3패)에서 한국은 막내의 활약으로 영패를 면했다. 신유빈이 북한 왼손 에이스 차효심을 돌려세웠다. 이어진 패자부활 8강에서도 신유빈의 활약은 눈부셨다. 단식에서 1패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와의 결승전, 2-0으로 앞서던 제3단식에서 최효주가 일격을 당했다. 제4단식 신유빈에게까지 공이 넘어왔다. "(최)효주언니가 1세트 9-2까지 앞서서 여유롭게 몸을 풀고 있다가 갑자기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첨엔 '나까지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했다. 근데 잡히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그래 내가 해. 내가 하지 뭐.'" 그렇게 신유빈이 해냈다. 그녀의 손끝에서 한국 여자탁구의 9회 연속 올림픽행이 결정됐다.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냈다. 신유빈은 "살면서 제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신유빈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열여섯 평생 1등선수로 살아왔지만 1등을 강요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태극마크'의 무게는 달랐다. 첫 대표팀에서 만난 유남규 감독과 '중국 귀화에이스' 전지희(포스코에너지)의 갈등이 불거졌고, 1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톱랭커 전지희가 낙마하면서 뉴페이스들로 꾸려진 대표팀이 손발을 맞춘 지 불과 이틀만에 올림픽 예선전에 나섰다.

신유빈은 "프랑스전에서 지면 끝장인데 혹시라도 티켓을 못 딸까봐 너무 떨리고 긴장됐다. 그럼 우리가 여자탁구 올림픽 대를 끊게 되는 건데…, 너무 부담됐다. 밥도 안넘어가서 파인애플만 먹었다"며 극도의 부담감을 털어놨다. 말로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떨렸다'는데 실전에선 완벽한 강심장, '포커페이스'였다. 피말리는 전쟁이 모두 끝나고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언니들이 안아주는데 왈칵 무너졌다. '아, 다행이다. 이제 끝났다. 해냈다'는 안도감…. 무엇보다 감독님, 언니들과 함께 이겨내서 너무 감사하다."



신유빈은 방탄소년단(BTS) 뷔의 열혈팬이다. 대한항공 입단 후 가장 먼저 챙긴 것은 나눔이다. BTS처럼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기부를 계획하고 있다.
대한항공에선 '금메달 제조기' 백전노장 강문수 감독과 '독종 국대' 출신 김경아, 당예서 코치가 그녀의 선생님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대표팀 코치로 유남규(삼성생명 감독)의 금메달을 일궜고, 삼성생명 사령탑으로 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IOC위원, 대한탁구협회장)을 키워낸 '68세 명장' 강 감독이 날마다 훈련 전 신유빈을 붙잡고 15분씩 볼박스를 쳐준다. 애제자 유승민(대한탁구협회장)에게 그러했듯 '유빈이'에게도 '하나 더, 한 포인트 더'를 강조한다. 신유빈은 "강 감독님은 '금메달' 유승민 회장님 선생님이시니까 저도 혹시?"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강 감독은 "재능은 틀림없다. 체력과 풋워크가 향상되고, 승부욕이 좀더 생긴다면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포르투갈에 다녀온 후 눈빛이 달라졌다. 대한항공에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음…, 모든 대회 싹쓸이?"라고 반문했다. 우승, 금메달, 올림픽 목표를 조심스럽게 말하던 신유빈이 달라졌다.

장차 어떤 선수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엔 더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실력 좋고 인성 좋은 선수, 기쁨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성공이나 성적, 메달이나 돈, 인기를 말하지 않았다. "선수가 아니었다면 이런 기쁨을 드릴 수 없잖아요. 이번 올림픽 예선서도 정말 힘들었는데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이겨냈어요. 그분들께 기쁨을 주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예요."

방탄소년단(BTS) 뷔의 열혈팬인 신유빈이 대한항공 입단 후 가장 먼저 챙긴 부분 역시 '나눔'과 '기부'다. BTS처럼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기부를 계획하고 있다. "어릴 때 아빠와 마루에 누워서 나중에 돈 벌면 기부하고 나누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돈은 먹고 살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배웠어요. 선수하면서, 많이많이 나누면서 살 거예요."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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