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권아솔을 말하다②]돌아온 권아솔, 도발에 실력으로 MMA에 한 획을 긋다

권인하 기자

기사입력 2019-05-09 15:51


권아솔이 로드FC 데뷔전서 일본의 나카무라에게 KO패를 당했다. 사진제공=로드FC

권아솔은 쿠메 다카스케와의 타이틀전서 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사진제공=로드FC

권아솔이 계체량에서 이광희와 신경전을 벌였다. 사진제공=로드FC

로드 FC 역사상 최초의 제주도 대회에서 아시아 MMA 역대 최대 상금이 걸려있는 100만불 토너먼트 'ROAD TO A-SOL' 최종전이 열린다. 100만불 토너먼트는 MMA의 중심을 아시아와 대한민국으로 돌리기 위한 정문홍 전 대표의 글로벌 프로젝트. 전세계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16명의 파이터 중 만수르 바르나위(27·TEAM MAGNUM/TRISTAR GYM)가 권아솔(33·팀 코리아MMA)의 상대로 살아남았다.

권아솔은 토너먼트 '끝판왕'으로 도전자가 누가 될지 지켜보며 기다려왔다. 이제 도전자가 결정돼 권아솔의 경기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화려한 로드 FC 챔피언의 모습인 권아솔.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2019년 5월 18일. 100만불 토너먼트 최종전을 기념해 권아솔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조리 파헤쳐본다.

우여곡절 끝에 복귀한 로드 FC. 복귀전은 최악의 KO패

군 생활을 마친 권아솔은 로드 FC 대회 복귀전을 노렸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권아솔은 로드 FC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군대에 가기 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ROAD FC 3회 대회였나…. 처음에 붙여달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 경기가 성사가 안 되고 로드FC에서 (남)의철 형과 시합을 잡아줬다. 나는 손에 부상을 당했었다. 심하지 않은 부상이었지만, 의철이 형에게 라이벌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합을 못하겠다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 얘기가 잘 안 됐다."

시합을 못한다던 권아솔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 단체 경기에 출전하며 문제가 커졌다.

"경기를 못 뛴다고 하고 3주 있다가 내가 원챔피언십에 나가게 됐다. 그 시합은 져도 되는 시합이었다. 그때 나에게 그 시합은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갔는데, 로드 FC에서는 배신한 사람이 됐다. 로드 FC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도 이해가 된다."

권아솔이 로드 FC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관계 회복이 필요했다. 권아솔은 당시 정문홍 대표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했고, 문제를 해결하며 현재 ROAD FC의 간판 스타로 맹활약 하고 있다.


"군대 갔다 와서 정 대표님께 찾아가서 로드 FC에서 뛰고 싶다고 사과 드렸다. 원래는 군대 전역 후 격투기를 더 이상 할 마음이 없었다. 근데 군대에서 매일 로드 FC 중계가 나왔다. 로드 FC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남)의철이 형이 로드 FC 챔피언이 됐다. 그런 걸 보면서 하고 싶었다. 종합격투기가 한 번 발을 들이면 끊기가 힘들다. 정 대표님 스타일이 품어줄 때는 품어주시는 스타일이라서 용서해 주시고, 시합을 잡아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로드 FC와 계약하게 된 권아솔은 일본의 나카무라 코지와 대결하며 결국 시합할 기회를 잡았다. 군대 공백은 있었지만, 승리한다면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허나 권아솔은 복귀전에서 처참하게 패했다. 자신의 주특기인 타격에 당하며 KO로 패했다.

이 경기에 대해 권아솔은 "전역을 7월 말쯤에 했는데 경기가 10월에 열렸다. 2~3개월 만에 시합을 했다. 감이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 운동이랑 멀어져 있다 보면 감이 떨어지는데 상대를 얕잡아 본 것도 있고, 내 몸 상태를 잘 몰랐다"며 패배의 원인을 분석했다.

패배의 아픔으로부터 권아솔은 많은 것을 배웠다.

"운동을 돌아다니면서 했었는데 그때 이후로 압구정짐에 와서 운동을 여러 사람들과 하게 됐다. 내 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는 걸 여러 사람들이랑 스파링을 하다 보니까 많이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는 방향을 찾아서 운동을 하게 됐다"는게 권아솔의 말이다.

방향을 찾아서 운동을 하게 됐다는 권아솔의 말은 그 다음 경기부터 결과로 나타났다. 타격이 최대 강점인 권아솔이 두 경기 연속으로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승리로 따냈다. 타격 위주로 경기를 펼치는 권아솔의 스타일상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다.

희생자(?)는 모두 외국 선수였다. 첫 번째는 모스타파 압둘라히, 두 번째는 지오반니 디니즈다.

권아솔은 타격에서 상대를 잘 공략한 뒤 그라운드에서도 확실한 피니쉬를 보여줬다. 모스타파 압둘라히와의 경기가 끝나고는 "로드 FC 라이트급 선수들은 아웃 오브 안중이다. 국내 선수들보다는 쿠메 (타카스케)나 뷰실 (콜로사)와 하는 게 좋다. 국내 선수들이 못한다는 게 아니고 재미가 없다"며 권아솔이 돌아왔다는 걸 알렸다.

1%의 가능성을 뒤집고 챔피언에 오르다

모스타파 압둘라히, 지오반니 디니즈와의 경기는 권아솔이 승리했지만, 감량 실패로 커리어에 오점을 남겼다. 아직까지도 권아솔에게 감량에 대한 걱정을 하는 팬들이 있는 이유다.

"그때는 감량법을 몰랐다. 옛날에는 2주 동안 물과 아메리카노만 마시고 감량하는 방법을 썼다. 나중에는 나이가 들고 똑같이 하다 보니 안 빠지더라. 군대에 갔다 온 뒤 체질이 변한 것 같다. 두 번 감량에 실패하고 나서 감량법을 바꿨다"며 감량 실패의 이유를 전했다.

그 이후부터 권아솔은 단 한 번도 감량에 실패한 적이 없다. 현재도 감량은 수월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권아솔은 공석인 로드 FC 라이트급 챔피언 자리를 놓고 쿠메 타카스케와 대결하게 됐다. 그 자리는 남의철이 UFC로 이적하면서 생긴 타이틀전 기회였다.

이 경기는 권아솔에게 남다른 타이틀전이었다. 패할 것이라는 예상이 99%였다. 본인도 "나에게 도전이었던 경기"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권아솔과 대결하기 전까지 쿠메 타카스케가 엄청난 기량을 보여줬으니 권아솔이 패할 거라는 의견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모두가 권아솔의 패배를 예상했는데, 권아솔은 더 오기가 생기며 동기부여도 남달랐다.

강한 상대를 꺾기 위해 권아솔은 많은 훈련을 소화했다. 자신의 강점을 살리면서 상대의 강점을 없애는 작전을 준비했다. 그 중 키 포인트가 쿠메 타카스케의 테이크 다운 시도를 막아내는 것이었다.

뚜껑을 열고 보니 권아솔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강했다. 쿠메 타카스케가 장점인 그라운드를 살리기 위해 테이크 다운을 시도했지만, 권아솔의 방어가 완벽했다. 태클 시도를 스프롤 앤드 브롤 (Sprawl & Brawl) 작전으로 막아내는 동시에 스탠딩 상황에서 공격을 노렸다. 당시 해설을 맡았던 로드 FC 김대환 대표도 감탄사를 연이어 내뱉으며 권아솔의 방어력을 칭찬했다. 준비한 작전을 권아솔이 완벽하게 실행에 옮긴 것이다.

"쿠메 타카스케의 작전은 예상하고 있었다. 태클 방어 연습을 많이 했다. 케이지에 붙어있을 때 클린치 상황에서의 수비도 연습을 많이 했다. 작전대로 잘 됐다" 권아솔의 말이다.

물론,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잘 막아내던 테이크 다운 시도에 단 한 번 빈틈을 내주며 백 포지션을 점령당했다. 기회를 잡은 쿠메 타카스케는 필사적으로 권아솔을 공격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권아솔은 당황하지 않았다. 박창세 감독의 말을 들으면 침착하게 대응했다.

백 포지션을 내준 상황에서 권아솔은 일어난 뒤 박창세 감독이 앞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박창세 감독이 지시한대로 움직이며 위기를 벗어났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권아솔은 쿠메 타카스케에게 파운딩 공격을 퍼부으며 KO승 직전까지 갔다. 아쉽게 경기 시간이 모두 끝나며 KO는 못시켰지만, 완벽에 가까운 방어와 공격으로 경기에서 승리할 것이 당연해보였다.

"잽을 많이 살려서 아웃복싱을 하면서 경기를 풀어가려고 했다. 수비에서 바로 공격으로 이어질 때 투, 바디, 스트레이트 연습도 많이 했다. 밑에 깔려 있어도 체력을 많이 안 쓰고, 당황하지 않고, 포지션을 역전하려고 했다. 한 번만 기회가 오면 끝내려고 생각했다. 연습할 때 체력 훈련으로 시간을 맞춰놓고, 파운딩 연습을 계속했다. 그때의 훈련이 마지막 파운딩으로 결실을 맺었다."

권아솔은 쿠메 타카스케를 꺾어 로드 FC 라이트급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사람들의 패배 예상, 강한 상대에 대한 도전 등에 자극을 받아 철저한 준비와 박창세 감독의 완벽한 작전, 마지막으로 작전 수행 능력까지 모두 결합된 승리였다.

라이벌 이광희를 꺾은 신의 한수

로드 FC 라이트급 챔피언이 된 권아솔은 승승장구 했다. 실력과 스타성을 모두 겸비해 격투기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권아솔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1차 방어전을 이광희와 대결하게 된 것.

이광희와의 1차 방어전은 권아솔 입장에서 의미가 컸다. 권아솔은 이광희와 과거 두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패했다. 아무리 챔피언이라도 권아솔의 패배를 예상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쿠메 타카스케전과 같은 상황이었다.

두 번의 패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권아솔은 칼을 갈았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이광희에게 1% 가능성도 주지 않기 위해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심리치료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권아솔에게 이광희와의 대결은 중요했다.

라이벌 답게 권아솔과 이광희는 서로를 향해 설전을 주고받았다. 이광희가 "(권)아솔이가 변했다. 예전에는 경기도 화끈하게 했는데, 이제는 변해서 재미가 없어졌다"라고 말하자 권아솔은 "(이)광희의 시계는 8년 전에 멈춰있다"고 맞받아쳤다.

신경전은 계체량에서도 이어졌다. 계체량 행사에서 권아솔과 이광희는 마주보자마자 서로를 밀쳐내며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로 붙었다. 갑자기 벌어진 몸싸움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심판들과 스태프들이 나서 제지하지 않았다면 계체량이 '싸움'이 될 뻔했다.

심판들과 스태프들의 제지로 겨우 진정이 된 후에야 계체량 행사가 이어졌다. 두 파이터는 케이지에서 승리를 다짐하며 공식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이날 권아솔과 이광희의 몸싸움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계체량 행사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더욱 큰 관심을 받았다.

전날의 긴장감을 그대로 안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 케이지 위로 권아솔이 올라갔다. 표정에는 비장함이 있었다. 경기 시작을 위해 케이지 아나운서가 선수소개를 할 때 권아솔은 '원산폭격'을 하며 각오를 다졌다. 이광희와의 대결이 권아솔에게 얼마나 중요한 경기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권아솔은 "정신무장을 하기 위해 했다"고 말했다.

이날을 위해 권아솔은 이전 경기들보다 더욱 착실히 준비하고 나왔다. 쿠메 타카스케와 대결할 때에 이어 '확실한 무기'를 가지고.

그 무기는 '엘보우'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로드 FC 공식 룰에는 수평 엘보우가 가능했다. 물론 수직 엘보우는 반칙이었다.

터치 글러브도 하지 않은 채 시작한 경기에서 권아솔은 침착하게 기회를 노렸다. 자신의 타격 거리를 만들며 이광희의 빈틈을 찾았다. 그리고 근접전에서 엘보우를 이광희의 이마에 적중시켰다.

권아솔의 공격에 이광희의 이마에서는 곧바로 출혈이 생겼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많은 양의 피가 흘렀다. 출혈로 인해 심판은 경기를 중단, 이광희의 상태를 체크했다.

치료를 받은 이광희와 권아솔은 다시 경기를 재개했다. 그러나 또다시 출혈이 발생했다. 찢어진 부위가 워낙 커 단 시간에 회복되는 건 불가능했다. 지혈을 계속 시도했지만, 재개된 경기에서도 출혈이 이어지며 경기를 할 수 없었다.

결국 경기는 닥터스탑 TKO로 권아솔이 승리했다. 이광희에게 복수를 성공한 짜릿한 승리였다.

경기 후 권아솔은 슬퍼하는 이광희에게 먼저 다가가서 위로했다. 승자로서 패자를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권아솔의 모습에서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느껴졌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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