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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폭력과 성범죄에 무방비, 폐쇄적 도제시스템 고쳐질까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9-01-10 05:20


연합뉴스

심석희(21)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 2연패를 거머쥔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간판스타다. 보통 이런 업적을 남긴 선수들은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영웅'으로 대접받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심석희는 지금 '영웅'이 아닌 '폭행 및 성폭행 피해자'의 입장이 되고 말았다. 분명 그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채 1년도 안 돼 자신이 누려야 할 모든 영예를 잃은 채 힘겨운 싸움을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자신을 쇼트트랙의 세계로 이끌었던 '스승' 조재범 전 코치가 휘두른 폭력을 참다 못해 세상에 털어놨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폭행 피해'까지 당했다고 입을 열었다. 아직 경찰 수사 단계지만, 이 일로 인해 그간 감춰져 왔던 체육계의 어두운 단면이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이 일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노태강 문체부 제2차관은 심석희가 조 전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 날인 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체육계의 성폭력 비위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노 차관은 "앞으로 성폭력 사건에 관해 '체육계의 눈높이'가 아닌 '국민의 눈높이'로 보고 대처하겠다"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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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노 차관이 직접 언급한 '체육계의 눈높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간 여러 형태의 물리적 폭력이나 성폭력 행위가 체육계에서 '지도와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용인돼 왔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일반 국민의 상식 기준에 맞도록 뜯어 고치겠다는 게 이번 문체분 성폭력 비위 근절 대책의 핵심이다.

비단 심석희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그간 체육계 도처에서는 지도자나 선배에 의한 폭행이 상당히 넓은 폭으로 자행돼 왔다. 언론이나 시민의 관심을 덜 받고 있는 아마추어 종목일수록 이런 관행이 더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게 체육계의 분석이다. 또한 지도자와 선수가 소수로 묶여있는 개인 종목의 경우에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폐쇄적 도제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될 수 있다. 특정 지도자가 선수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전담해 가르쳐 오는 과정에서 굳건한 유대감이 형성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스승-제자'의 단계가 더욱 고착화 되면, 비정상적인 행위들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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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에 대한 폭행에 대해 '다 내 새끼 잘되라고 가르치는 방법일 뿐'으로 치부되는 식이다. 엄밀히 말해 지금까지 한국 체육계가 국제대회에서 일궈낸 성과의 많은 부분들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만약 이런 기형적 지도 방식이 여성 선수에게 적용되면, 그대로 '성폭력 문제'가 된다. 굳이 성폭행의 단계에 이르지 않더라도, 지도나 훈계를 핑계로 한 부당한 신체접촉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선수들은 자신의 진로나 경력에 관해 절대적인 권한을 지닌 전담 지도자의 잘못에 대해 반대하거나 이를 외부에 알리기 어렵다. 어린 시절부터 절대적 복종에 익숙해져 온 탓이다.

결국 체육계의 고질적인 폭력과 성폭력 문제는 특정 개인의 가치관이나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폐쇄적인 도제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 차관 역시 "체육계의 폐쇄적인 구조 때문에 외부에서는 폭력이나 성폭력 문제에 관해 쉽게 알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제2의 심석희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선수 육성 시스템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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