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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승은 잘해야 동메달 아니냐. 죽자 살자 하지말고 편안하게 다독였는데 그게 통한 것 같다."
1~4차 시기 합계 3분16초38을 기록한 한국은 독일의 니코 발터 조와 동률을 이뤄 공동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독일의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 조는 3분15초85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봅슬레이는 그 동안 유럽과 미주의 전유물이었던 올림픽 메달을 빼앗았다. 한국의 생애 첫 올림픽은 2010년 밴쿠버 대회였다. 남자 4인승이 스타트를 끊었다. 당시 '한국의 썰매 개척자' 강광배를 비롯해 이진희 김동현 김정수가 호흡을 맞춰 19위에 올랐다. 4년 전 소치 대회에선 원윤종-전정린-석영진-서영욱 조가 20위에 랭크된 바 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의 메달이다. 봅슬레이 종목에서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에 발을 뻗은 국가는 일본이었다. 1972년 자국에서 벌어진 삿포로 대회였다. 이후 1984년 대만이 아시아의 두 번째 국가로 올림픽에 나섰지만 유럽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의 벽은 높았다. 아시아는 46년간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 한을 한국 봅슬레이 4인승이 끊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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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전환이 효과를 봤다. 봅슬레이 2인승은 비장하게 준비한 것에 비해 4인승은 편안한 분위기였다. 이 감독은 "2인승은 경기 이틀 전부터 숨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모든 것을 통제시키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준비했다. 그런데 4인승은 편안하게 했다. 사람들도 왔다 갔다 하고 음악도 틀어놓고 선수들에게 긴장할 틈을 안 줬다. 그런 것이 조바심을 버리고 편안하게 탈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베테랑 브레이크맨 김동현의 대회 직전 합류는 신의 한 수 였다. 이 감독은 "사실 김동현에게 (브레이크맨으로 합류해주길)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왔다. 김동현도 파일럿 생활을 5~6년 했던 선수다. 자존심을 접고 결단을 내려준 것이다. 이후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원윤종의 무결점 드라이빙 능력은 눈물로 다져졌다. 이 감독은 "사실 2인승이 끝나고 원윤종이 펑펑 울었다. 정말 펑펑 울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 달래주고 싶었는데 그 눈물로 2인승 못했던 것을 다 치유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냥 놔두었다. 덕분에 4인승 때 실수 없이 잘 탄 것 같다. 2인승의 한을 풀었다"고 전했다. 평창=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