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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PCS는 더욱 대단하다. PCS 구성요소는 스케이팅 기술 트랜지션 퍼포먼스 안무(컴포지션) 음악해석 등의 5개 부문으로 나눠 심판이 각각의 구성요소에 대해 점수를 준다. 그리고 '팩터(Factor·0.80)'와 곱해 총점을 도출한다. 메드베데바와 자기토바는 모든 요소에서 9점 이상을 받았다. 메드베데바의 경우 스케이팅 스킬(9.54점), 퍼포먼스(9.71점), 안무(9.68점), 음악해석(9.71점)에서 9.5점을 넘겼다. 자기토바는 퍼포먼스에서 9.64점을 받았다. 점수만 보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연기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는 점수만큼 인상적이지 않다. 기술이야 그렇다고 해도, 예술면에서는 채점표의 엄청난 PCS만큼은 아니다. 역사상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히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김연아의 채점표와 비교해보자. 당시 김연아는 기술성과 예술성에서 모두 최고라는 평가를 들었다. 김연아는 TES 44.70점과 PCS 33.80점을 더해 당시 세계신기록인 78.50점을 받았다. TES부터 보자. 김연아는 스핀에서 다소 약점이 있었지만, 점프에서는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토바에 0.60점 뒤진 결정적 이유는 가산점이다. 2010년에는 1분10초 후 가산점이 붙지 않았다. 기술요소는 정해진 채점표에 따라 진행되는 만큼 별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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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가 높아진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가산점이다. 메드베데바와 자기토바는 가산점이 붙는 후반대에 점프를 집중 배치한다. 최대한 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영리한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많다. 미국 USA투데이의 칼럼리스트 크리스틴 브레넌은 "프로그램 전반부에 점프를 하면 다리에 피로가 생긴다. 그걸 감안해 후반부에 뛰는 점프에 10% 가산점을 더 주는 것이다. 자기토바는 전반부에 점프를 단 한 번도 뛰지 않기 때문에 후반부에 노력 없이 가산점을 받아간다"고 꼬집었다. 2016년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 애슐리 와그너(미국)도 자기토바의 프로그램 불균형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방 위원 역시 "메드베데바와 자기토바는 좋은 스케이터기는 하지만 아직 점프없이 프로그램을 끌어갈만큼의 능력은 없다. 그래서 좋은 기량에도 불구하고 연기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점수 인플레이션은 평창올림픽을 끝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방 위원은 "계속된 점수 폭등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역시 조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PCS 채점에 대한 기준이 보다 엄격해질 것"이라고 했다. 가산점을 노린 점프의 후반부 몰아넣기 역시 "아직 정식 논의는 되지 않았지만, 이 역시도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여자 싱글이 올림픽의 꽃이 되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기술 위주의 경쟁이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세계신기록 행진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23일 프리스케이팅에서 향후 몇년간 깨지지 않을 세계신기록이 세워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한가지. 과연 김연아가 이번 평창올림픽에 뛰었다면 어떤 점수를 받았을까. 방 위원은 "단순 비교는 어렵다"고 대답을 피했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토바의 기록과 비슷하거나 이상 가는 점수를 올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밴쿠버 때의 연기라면 확신할 수 있다. 아니 아쉽게 은메달을 거머쥔 소치 때 연기도 마찬가지다.
강릉=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