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
|
"내 올림픽 때보다 더 떨리더라. 심장이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
'탁구 레전드'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49)의 외동딸 유예린(11·군포 화산초)이 7일 김천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교보생명컵 꿈나무탁구 여자단식 3학년부 결승에서 우승했다. '라이벌' 최나현(11·서대전초)를 3대0(11-7, 11-4, 11-2)으로 꺾었다. 준결승에서 강혜령(11·용황초)을 3대0으로 완파한 후 결승전에서도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날 현장에서 직접 딸의 우승 장면을 지켜본 유 감독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단식 금메달,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남자단식 금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대표팀 감독…, '천하의 강심장' 유남규도 딸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노심초사'하는 평범한 부모일 뿐이었다.
|
유예린이 교보생명배 꿈나무탁구 초등 3학년부에서 우승한 후 '아빠' 유남규 감독과 '엄마' 윤영실씨가 윤지혜 군포 화산초등학교 코치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
|
|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
|
|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
|
딸 예린이가 우승하던 날
이날 유예린의 우승 각오는 남달랐다. 지난 3월 회장기대회 결승에서 라이벌 이가빈(만안초)에게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이번엔 꼭 우승해야 한다"고 했다. 16강에서 부담감 탓인지 긴장했다. 김준희(11·탑동초)와 풀세트 접전끝에 3대2(11-13, 11-6, 5-11, 11-7, 11-5)로 간신히 이겼다. "예린아, 져도 괜찮아. 재미있게 하면 돼. 승부는 5, 6학년 때 하고, 4학년까지는 결과보다 기본기에 신경쓰자." 딸에게 담담하게 조언했지만, 정작 더 떨리고 더 간절한 건 유 감독이었다. "평생 승부의 세계에 살아서인지 딸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정말 긴장되더라. 이기기만 바라게 되더라. 내 올림픽 때보다 더 떨렸다. 심장이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 예린이가 1등을 하고 나오는데, 그 해맑은 웃음… 아, 너무 행복했다." 우승을 확정한 순간, 유 감독은 딸을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며 무한한 기쁨을 표했다.
|
유남규 삼성생명 여자탁구 감독과 아내 윤영실씨가 딸 예린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
|
|
사진제공=더핑퐁 안성호 기자 |
|
험난한 스포츠인 2세의 길, 딸의 멘토 되겠다
스포츠인 2세의 길은 험난하다. 어딜 가나 '누구 딸' '누구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레전드 부모'와의 끊임없는 비교는 감당해야할 숙명이다. 부모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맘놓고 즐기기도 힘들다.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꿈을 접게 되는 안타까운 사례도 많다.
유 감독 역시 고민이 깊었다. 스키도 시켜보고, 발레도 시켜봤다. 이틀만에 스키를 마스터했다. 달리기를 하면, 친구들보다 20m는 더 앞서 달렸다.
하지만 '탁구 유전자'는 무시할 수 없었다. 5세 때 재미삼아 라켓을 든 딸의 몸놀림은 한눈에 봐도 남달랐다. 국가대표 감독 출신, '매의 눈'을 가진 유 감독은 딸의 재능을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초등학교 1학년 때 탁구의 길을 열어줬다. '탁구신동' 신유빈의 선생님인 국가대표 후배, 윤지혜 군포 화산초 코치를 찾아갔다. 유 감독은 "윤 코치가 다혈질인 예린이를 현명하게 잘 이끌어주어 고맙다"고 했다. '윤 코치님' 말을 법으로 아는 예린이는 집에서 세계 1등 '아빠감독'의 말엔 시큰둥하다. "일요일에 시간 날 때 가끔 탁구를 봐주는데, 아빠라서 그런지 집중을 안한다. 달래가며 얼러가며 혼내가며 해야 한다"며 웃었다. 3학년 딸에게 작정하고 쓴소리를 할 때도 있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유 감독은 "예린이는 감각, 재능을 타고 났다. 아직 노력은 부족하다. 예린이는 오후 5시까지 학교 훈련 외에 개인훈련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 내가 정신적인 멘토가 돼줘야 한다. 혼내고 나서 뒤돌아서서 나도 운다. 그래도 강하게 키워야지 어쩌겠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나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게…."
|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유남규. 유예린은 아빠의 탁구 센스, 운동신경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될 성부른 스포츠인 2세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
여자탁구 대표팀은 꿈나무들의 희망이다
유 감독은 이날 딸의 우승 직후 여자대표팀의 분투를 독려했다. "우리 대표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해, (신)유빈, (유)예린이같은 꿈나무들이 목표의식을 갖게 해주면 좋겠다. 언니들처럼 되면 나도 금메달 딸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 좋겠다." 오래 전, 자신의 꿈나무 시절을 떠올렸다. "중학교 2학년 때 김완 선배가 월드컵에서 '세계 챔피언' 중국의 장자량을 이겼다. '김완 선배만 이기면 나도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꿈을 키웠다. 그렇게 해서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김)택수는 (유)남규 형만 이기면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유승민도 그랬다. 그렇게 이어온 금맥이 끊어졌다. 우리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만족하지 말고, 중국을 못 이긴다 하지 말고…, 꿈나무들이 언니들을 늘 보고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 매경기 그런 사명감을 갖고 뛰어주길 바란다. 내년 아시안게임 때 꼭 보여줬으면 좋겠다. 금메달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한국 탁구 꿈나무들의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탁구를 하면서, 우승을 하면서, '유남규 딸' 예린이는 목표가 더욱 또렷해졌다. 아빠의 대를 잇는, 올림픽 금메달을 꿈꾼다. "예린이가 우승하자마자, '이제 랭킹 1위지? 올림픽 금메달 딸 거야' 하더라. 금메달을 따서 아빠처럼 유명해질 거라고…. 기특하다. 딸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
지인들에게 거하게 고기 한턱 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유 감독의 목소리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행복감이 묻어났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마감직전토토, 실시간 정보 무료!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