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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없다."
정 현은 아쉬운 듯 잠시 땅을 쳐다봤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들었다. 상대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축하의 악수를 건넸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디미트로프의 승리와 정 현의 아름다운 스포츠맨십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경기를 마친 뒤 정 현은 "많은 것을 배웠다"며 "전체적으로는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후회는 없다. 만족하는 경기"라며 웃었다. 코트 위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후 정 현은 슬럼프와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에서 연달아 1회전에서 탈락하며 고개를 숙였다. 여기에 복부 부상까지 겹치면서 정 현은 대회 출전 중단을 선언했다. '꿈의 무대'인 2016년 리우올림픽 출전도 포기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정 현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된 서브와 포핸드 밸런스부터 집중 보완했다. 고우라 다케시(일본) 코치를 초빙해 레슨도 받았다.
4개월 동안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한 정 현은 지난해 9월 난창 챌린저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기세를 올린 정 현은 가오슝 챌린저와 휴고 챌린저에서 잇달아 정상에 오르며 자신감을 장착했다.
긍정적인 분위기는 2017년에도 계속됐다. 호주오픈 본선 대기 1번이던 정 현은 케빈 앤더슨(68위·남아공)이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하면서 본선에 직행했다. 2연속 호주오픈 진출.
정 현은 펄펄 날았다. 서브 타점이 높아지면서 때리는 힘이 강해졌다. 여기에 포핸드 순간의 팔동작을 교정하며 정확성을 키웠다.
정 현은 1회전에서 세계랭킹 79위인 렌소 올리보(아르헨티나)를 세트스코어 3대0으로 가볍게 제압하고 2회전에 올랐다. 비록 2회전에서 1세트를 챙기고도 역전패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정 현은 지난해보다 한 단계 성장한 모습으로 기대를 높였다.
한 뼘 더 자란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 현. 마우이챌린저와 데이비스컵에 출격 대기하는 그는 "다양한 경험이 경기하는데 도움이 됐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