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남미에서 열린 사상 첫 올림픽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지난 6일(이하 한국시각) 화려한 개막식으로 문을 연 제31회 리우올림픽은 22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이었습니다. 치안과 정치 불안, 지카바이러스 등 모든 것이 불투명했죠. 한국은 목표였던 금메달 10개 획득에는 한걸음 차로 실패했지만 종합순위 8위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습니다. 뜨거웠던 땀의 현장을 함께 호흡하며 리우의 열기를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했던 3명의 기자가 리우의 뜨거웠던 8월을 되돌아 봅니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허상욱, 박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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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이하 김)먼저 먼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브라질의 첫 인상부터 이야기할까요. 저는 8월2일 브라질에 도착해 곧바로 축구대표팀이 있는 사우바도르로 이동했습니다. 저를 본 신태용 감독이 첫 마디로 "고참기자 드디어 왔네?"라며 웃더라구요. 신 감독은 "피지는 대학팀이다. 걱정할 것 없다. 무난히 이길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습니다. 다만 2승1패로 떨어질수도 있어서 꼭 대승을 해야한다는 점이 불안했죠. 하지만 8대0 대승으로 순조롭게 마무리했습니다. 저의 올림픽은 그렇게 시작됐죠.
(박찬준·이하 박)8월 2일에 들어왔습니다. 치안 보다는 오히려 주최 측의 준비 부족이 아쉬웠습니다. 숙소에 갔는데 예정에 없던 일본 기자와 한방을 쓰고, 뜨거운 물도 안나왔습니다. 항의를 하고 나서야 고쳐주더군요. 동선을 익히려 미디어 버스를 타는 와중에도 기사가 버스를 잘못타서 엉뚱한 곳으로 가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황당했죠.
(김)개막 후 첫 날부터 골든데이였습니다. 축구 취재를 마치고 리우로 넘어와 바로 양궁장으로 향했습니다.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지켜봤는데요. 그 중에서도 구본찬의 생기발랄함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취재진을 만날 때마다 ?슷떳? "아름다운 밤입니다"란 말, 지금 생각해도 재밌습니다. 신의 계시인지 모르지만 구본찬은 단체전 직후 "오늘 이후에는 다 적이다"라며 개인전 금메달까지 2관왕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는데요. 김우진은 "저 친구 재밌는 친구라 상관없다"며 웃어 넘겼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구본찬이 결국 개인전 금메달까지 품에 안았죠. 생각해보면 구본찬은 이번 대회를 가장 즐겼던 선수가 아니었나 싶네요.
(박)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구본찬이 2관왕을 달성한 후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수다스러웠어요. 지치지도 않고 떠들더라고요. 하지만 그도 인간이었습니다. 오후에 다른 매체들과 인터뷰할 때 방전된 모습을 보였다네요. 해당 매체 기자들이 "이거 본찬씨 원래 모습 아니잖아요?"라고 묻자 "저도 사람인가봐요"라고 했다네요. 해당 기자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죠.
(허)여자 선수들 경기할때 웃으면서 춤춘 선수가 있었는데, 그게 구본찬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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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카메라에 잡힌 박태환의 얼굴은 참 어둡더라고요. 믹스트존에 가기 전까지 표정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안타까웠습니다. 본인의 말대로 즐겼으면 했는데 말이죠.
(박)3연패로 많은 주목을 받은 진종오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습니다. 10m 공기권총에서 5위에 그쳤는데 사실 브라질 관중들의 비매너 때문이었습니다. 브라질 선수가 가까스로 결선에 합류하면서 현지 관중들이 대거 경기장에 모였거든요. 이번 대회부터 사격장에서 시끄러운 응원을 할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너무 심할 정도였어요. 격발이 늦은 진종오 입장에서는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었죠. 바로 4일뒤 본인의 주종목인 50m 권총에서 사상 첫 3연패로 만회를 했는데요. 6.6점을 쏠때까지만 해도 기자들이 모두 탈락 혹은 동메달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판 대추격전이 펼쳐지자 기자들도 모두 엉덩이를 들고 응원 모드로 바뀌었던게 기억나네요.
(김)다시 축구 이야기로 돌아오면 사우바도르-브라질리이-벨루오리존치까지 비행기로 이동하는데 선수들 사이에 '손흥민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 죄다 손흥민이 즐겨하는 게임을 다 따라하고 있더라고요. 단 한명 예외가 있었는데요. 정승현이었는데요, 유일하게 책을 읽더라고요. '당신은 도전자입니다'라는 책이었는데 기자들의 정승현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신태용 감독이 워낙 호방하고 유쾌해서인지 선수들 표정도 참 밝았습니다. 대표팀을 취재하면서 역대로 이토록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처음봤습니다. 정말 유쾌했죠.
(허)저는 손흥민 한테 물을 먹은 기억이 있어요. 브라질리아에서 멕시코를 꺾고 8강을 확정지은 후 손흥민이 셀카를 찍었거든요. 근데 다른 신문사들이 1면에 그 셀카 사진을 썼더라고요.
(박)참, 저는 이번 대회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어요. 사격 50m 소총 복사에서 김종현이 깜짝 은메달을 거머쥐었는데요. 당시 예상 못했던 메달이라 통신사에서도 기자들이 늦게 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예상을 못한 것은 조직위도 마찬가지였나봐요. 한국어 통역을 미처 준비시키지 못했던거죠. 그래서 저한테 사정사정을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영국에 있었던 경험을 살려 올림픽 방송 공식 인터뷰 통역을 해줬죠. 그러자 공식 기자회견까지 요청이 들어왔는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기사 작성 핑계를 댔지만 사실 제 영어실력이 들통날까봐 두려워서였습니다.
(김)이번 대회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펜싱의 박상영입니다. 누구도 예상 못한 금메달이었는데요. 10-14에서 역전하는 장면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감독도 그때 포기했다고 했죠. 1%도 안되는 가능성을 돌린 기적이었죠. 인터뷰도 재밌더라고요. '구본찬과'였어요. 특히 화제가 된게 혼잣말로 '할 수 있어'를 두번 외친 장면이었죠. 이를 벤치마킹한 정영식이 동메달결정전에서 '할 수 있어'를 세번 외쳤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박)여러모로 힘들었던 이번 대회에서 '할 수 있어'가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선수들끼리도 화두였던 것 같아요. 김종현도 경기 중 '할 수 있어'가 생각났다고 하고, 정영식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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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저도 그날 손흥민을 주시해서 찍었는데요. 들어갔다 싶은게 안들어가니까 보는 저도 안타까웠습니다. 뭘해도 안되는 날이 있잖아요. 손흥민에게 온두라스 전이 그런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저는 아쉽다기 보다는 선수에게 미안했던 순간이 있었는데요. 네덜란드전 직후 박정아(여자배구대표팀)에게 그랬습니다. 그날 너무 경기력이 안좋아서 저희도 보면서 안좋은 소리를 했거든요. 근데 돌아오는 버스에서 박정아랑 친한 기자가 "정아 SNS 폐쇄했어"라고 하는데 미안하더라고요. 박정아가 마음이 여린 선수거든요. 생각해보니까 네덜란드전 직후 가장 많이 울었던 선수가 박정아였던 것 같아요.
(김)이것만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하는 장면이 있었나요.
(허)시상식에서 메달 깨무는 사진은 그만 찍었으면 좋겠어요. 더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김)죄송하다, 아쉽다는 말을 그만 듣고 싶습니다. '다음번에 어떻게 해서 더 잘하겠다' 이런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런데 아직도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잖아요.
(박)그런 의미에서 역도의 이희솔, 손영희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유쾌했던 인터뷰 중 하나였습니다.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그 자체로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어요. 기자들이 이렇게 많은 것 처음 봤다며 저희를 배경으로 셀카까지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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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저는 레슬링 종목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당시 김현우의 기술이 2점이냐, 4점이냐가 핵심이었거든요. 근데 누구도 명쾌하게 답을 못하더라고요. 아니, 올림픽까지 하는 종목이 점수체계가 이렇게 주먹구구인가 싶었습니다. 퇴출될뻔 했던 이유가 있더라고요.
(김)기억 나는 동메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배드민턴의 정경은-신승찬 조가 생각납니다. 조합을 꾸린지 1년 됐다는데 서로 얘기하면서 울더라고요. 그간 어려움이 느껴져서 짠 했습니다. 배드민턴에서 동메달이라도 나와서 다행이었습니다.
(허)직접 찍지는 않았는데 이대훈의 사진을 보고 놀랐습니다. 졌는데 정말 밝은 표정으로 상대 선수 손을 들어주더라고요. 나중에 이유를 찾아봤더니 "예전에는 지면 슬퍼하기만 했다. 지난 올림픽에서도 승자를 축하해주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말을 했더라고요. 이대훈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김)대회 막판 낭보가 전해졌죠. 유승민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는데요. 체육회 관계자는 "10-10은 못했지만 나머지 한개의 금메달은 유승민이 채웠다. 10-10과 마찬가지"라며 기뻐하더군요.
(허)선수촌에 취재를 갔는데 유승민이 선거운동을 하더라고요. 결과 발표전이라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해서 사진을 안올렸습니다. 당선 사실을 알고 기분 좋게 사진을 올린 기억이 있습니다.
(박)대회 막판의 주인공은 역시 박인비였습니다.
(김)체육회의 고위 관계자가 그러더군요. 박인비가 한국선수단을 살렸다고. 사실 부상 후유증으로 박인비의 금메달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 선수 중에는 김세영 전인지가 더 유력한 후보로 꼽혔구요. 하지만 마음 먹고 나온 박인비를 막을 선수는 없었습니다. 스테이시 루이스도 가까운 기자한테 "인비가 전성기 기량을 찾았다"고 얘기했다고 하네요. 더 무서운 것은 부상을 안고 뛰었다는 점이죠. 경기 끝나고 울지 않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커페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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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손연재가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도 기억에 남아요. 사실 손연재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취재에 애를 먹였던 선수였거든요. 동선 파악이 잘 안되서…. 하지만 4위를 확정하고 믹스트존에서 웃는 모습을 보니까 많이 성숙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경기 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일들은 없었나요.
(허)양궁 경기가 열렸던 곳 바로 옆이 파벨라였어요. 맨날 같은 것만 먹으니까 현지식에 도전해봤는데 사실 저희가 고가의 사진 장비를 지니고 있어서 범죄의 타깃이 되기 싶거든요. 멀지 않은 곳에 가서 빵도 먹고, 뷔페도 먹었지만 등골이 오싹했던 악몽의 순간들이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이 남습니다.
(김)마지막으로 이번 올림픽을 돌아볼까요. 저는 남미에서 처음 열리는 올림픽, 분명 부실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쉽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탈 없이 끝났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성적을 떠나 올림픽을 좀 더 즐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즐기면 분명 성적도 뒤따를 것입니다.
(허)생갭다 모기도 없었고, 생갭다 치안도 괜찮았고, 생갭다 지낼만 했던, 그런 올림픽이었던 것 같아요. 생갭다 메달을 못딴 것은 아쉽지만.
(김)믹스트존의 풍경이 떠오르네요. 사실 선수들의 진짜 민낯을 볼 수 있는 곳이거든요. 웃었던 선수도 화를 내고, 슬펐던 선수가 웃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 선수들의 모두가 표정이 같아요. 너무나도 진지하고, 메달 못 따면 죄 지은듯 하고. 4년간 흘린 땀방울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출전 선수들 하나하나가 모두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웅들입니다. 다음 대회부터는 밝게 웃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정리=박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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