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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유승민 IOC 선수의원 "눈빛이 따뜻한 행정가가 되고 싶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6-08-19 04:04



"선수 유승민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면, 행정가 유승민은 눈빛이 따뜻해서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유승민(32)이 한국인으로는 두번째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IOC는 19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 올림픽 선수촌 내 프레스룸에서 선수위원 투표결과를 발표했다. 유승민은 투표자 5815명 중 총 1544표를 획득했다. 후보자 23명 중 2위를 차지해 당선 기준인 상위 4위 안에 포함되며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2008년 문대성 위원 이후 두번째 쾌거다. 신아람 1초 사건의 주인공 브리타 하이데만은 1603표로 가장 많은 득표에 성공했고, 3위는 1469표를 획득한 수영 다니엘 지우르타(헝가리), 4위는 1365표를 얻은 육상 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가 차지했다.

투표는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전체 선수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24일부터 17일 자정까지 진행됐다. 1만1245명의 선수 중 5185명이 투표에 나섰다. 선수 1명당 4명까지 투표할 수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신설된 IOC 선수위원은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뽑는다. 하계종목은 8명, 동계종목 4명 등 총 12명의 선수위원을 선출한다. 이번 투표에서는 상위 4명까지 IOC 위원 자격이 주어진다. 임기는 8년이다.

이번 유승민의 IOC 선수위원 당선으로 한국 스포츠의 외교력에도 힘을 받게 됐다. IOC 선수위원은 동·하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등 IOC 위원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한국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때 쇼트트랙 출신의 전이경,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루지의 강광배가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IOC 위원으로 삼성 이건희 회장과 문대성이 있지만 이 회장은 건강 악화로, 문 위원은 직무 정지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써 유승민은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IOC 위원 역할을 하게 됐다.

2016년 리우올림픽 개막에 앞서 현지에 입성한 유승민은 선수촌과 경기장을 쉴 새 없이 누볐다. 유승민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가 낮았다. 여기에 우리 선수단 수가 1984년 LA올림픽 이후 가장 적었다. 하지만 유승민은 풍부한 경험과 특유의 친화력, 성실함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결국 쾌거를 이뤘다.

유승민은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왕하오(중국)를 넘고 남자 탁구 단식 금메달을 따는 등 총 4차례 올림픽에서 금, 은, 동메달 한 개씩을 거머쥔 스타다. 현역 은퇴 후 삼성생명 코치로 활약했던 그는 선수위원에 도전장을 던졌다. 유승민은 작년 12월 국내선발전에서 역도 장미란과 사격 진종오를 제치고 대한체육회(KOC)의 IOC 선수위원 후보로 선정됐다. 유승민은 "그동안 많이 응원하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지난달 23일 도착해서 24일부터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결과장에 가지는 못했다. 너무 떨릴 것 같았다. 메시지를 전달 받고 나왔다. 기쁨도 있지만 책임감이 무겁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서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유승민 의원의 일문일답.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당선 소감은.

그동안 많이 응원하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지난달 23일 도착해서 24일부터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결과장에 가지는 못했다. 너무 떨릴 것 같았다. 메시지를 전달 받고 나왔다. 기쁨도 있지만 책임감이 무겁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서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겠다.

-기대를 받지 않았는데.

현장에 와보니까 선수들이 선수위원 선거에 대한 정보를 가진 선수가 없었다. 발로 뛰는게 중요할 것 같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사했다. 진심으로 인사했다. 내가 같은 자리에서 밝은 미소로 맞이해주니까 힘이 났다고 투표해줬다고 한다. 진심을 보여주니까 기대는 못받았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기대를 안했기에 부담감 없었다. 나도 한국에서 올때부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가족들, 친구들로부터 힘 얻었고 그래도 어찌됐건 대한민국 대표로 나왔는데 어설프게 활동하면 안되겠다는 생각 들었다. 한달,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외로웠지만, 끝나니까 너무 기분 좋다.

-뽑아준 선수들에 한마디 하면.

나를 뽑아주던 안뽑아주던 내 인사를 25일간 지겹도록 받아준 선수들에 고맙다. 선수생활을 오래했기에 얼마나 민감하고 방해받고 싶지 않은지 알기에 조심스러웠다. 사실 끝나는 날까지 왜 여기 서있는지 모르는 친구 많더라. 마지막 투표 해달라니까 그제서야 알더라. 우리 선수들도 고생했지만 굉장히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지지한 선수들에 감사하고 싶다.

-몸상태도 좋지 않았다던데.

다행히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8월5일이 내 생일이었다. 아침에 유세 왔는데 목이 부엇더라. 다행히 잘 치료해줘서 컨디션 잘 회복했다. 긴장하다보니까 더 몰두했다. 살도 빠지고 다행히 안아파지더라. 어제 모처럼 코리아하우스에서 맛있는거 먹었다.

-한국 스포츠를 위해 어떤 역할 할 것인지.

지금 한국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IOC와의 가교역할을 해야하는 책임감을 잘 알고 있다. 행정가로서의 임무를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임무를 익혀서 최대한 도움되려고 한다. 선수위원으로 당선됐는데 개인의 영광 떠나서 어떻게 하면 선수들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만500명 선수들의 고민이 있더라. 선수들도 관심 있는 분야가 다르다. 은퇴 후 고민들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을때 반응 좋았다. 그런 부분에서 내 역량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

-선수들이 지적한 이슈는 무엇인가.

이번에 선수를 만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선수들의 가장 큰 이슈는 '과연 선수위원이 선수를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 받았다. 나도 후보자로 질문에 답을 해야해서 구체적으로 못했다. 선수들이 커리어 쌓는 동안 선수위원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선수들과 위원간의 관계를 친밀하게 할 수 있도록 역할 하겠다. 그 다음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 다가가겠다.

-어떤 점을 많이 어필했나.

은퇴해서 시간이 많다. 너희들 많이 만날 수 있으니까 뽑아 달라고 했다.

-다음 일정은.

20일에 오전 총회하고 선수위원회하고 미팅하고 폐막식 참석 일정이 잡혀있다. 카드도 위원 카드로 바로 바뀌었다. 폐막식에 공식적인 카드 나온다고 하더라. 아직 정신도 없어서 공식일정 모르겠지만 체육회와 상의 뒤 일정 알려드리겠다.

-고마운 사람들은.

룰이 워낙 타이트하다보니 후보자들끼리도 너무 힘들다고 얘기 많이 했다. 같이 선거활동한 후보자들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정보도 공유했다. 내 친구들이 응원해주기 위해 14일에 들어와서 오늘 돌아갔다. 우리 친구들, 팀 RSM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탁구 대표팀에 어제 안타깝게 메달획득 실패했다. 아쉽더라. 영식이나 상수는 처음 나온 올림픽에서 아쉬웠고, 세혁 선배 마지막이라 아쉬웠다. 선수들 응원해줘서 잘 된 것 같다. 체육회 관계자, 임원들에게도 감사드리고 싶다.

-과정이 힘들었다고 하는데.

선거 운동을 같이 할 수 없다. 누가 누구를 도와줄 수 없다. 선수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위치가 버스 타는 위치였는데 내가 처음부터 선점했다. 다른 후보들도 거기로 모이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안다니는 시간에는 후보들끼리 모여서 고충, 앞으로의 역할 등을 상의했다. 서로가 격려해준 것 같다. 이번에 페어플레이 했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과 같이 셀카도 찍고 했는데, 바흐 위원장이 '지난 선거는 컴플레인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페어하다'고 좋아하더라. 후보들도 페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4년 금메달과 이번 당선을 비교하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는 팀하고 같이 나가서 팀과 응원 받으면서 했다. 코치, 응원단 등이 든든했는데 이번에는 혼자 와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다. 혼자나가고 혼자 들어오고 모든 것을 혼자 해야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너무 힘들었다. 우리 강문수 총감독이 항상 하셨던 말씀이 '원모어', 남들보다 1분, 1시간, 1달 더 하면 된다고 하셨다. 숙소로 들어갈려고 해도 선수 한명 보이면 못들어가겠고 그런 생각들이 통한 것 같다. 이번에는 외로운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때는 울컥했다면 이번에는 기뻐해야 할 것 같다. 금메달을 땄기에 이런 자리 와 있을 것 같다. 어떤 IOC 위원이 새로운 인생 시작됐다고 하더라. 25년은 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했다면 지금부터는 내 커리어를 위원회나 선수들, 대한민국 스포츠에 헌신해야 하는 포지션이 됐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

-처음 선수위원 도전할때를 돌아보면.

런던올림픽에 나갈때 힘들었다. 후배들과 단체 한자리를 두고 경쟁했을때다. 가장 힘들었을때다. 유승민 안된다고 하면서도 버틴 것은 선수위원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04년에 문대성 위원하고 같은 룸을 섰다. 그때 다 보면서 꿈을 가졌다. 런던 끝나고 장미란 진종오가 나온다고 하면서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지도자 하고 있었다. 갑자기 하게 된 것은 누군가가 '그래도 마지막 기회인데 나가서 도전해보는게 의의 있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때 재결심을 해서 다시 나가게 됐다. 팀RSM이라는 친구들에서 도움을 주는 분이 이야기 해주셨다. 나에게는 감사한 분이다. 올때 책도 선물받았다. 사람들은 왜 이한마디에 꽂히는가 라는 책이다.

-8년 뒤 어떤 선수위원으로 기억되고 싶나.

8년 뒤 나는 열심히 해서 정식 멤버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선수위원을 하면서 명함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업무 잘처리해서 인정 받고 싶다. IOC 들어가서 인정받고 특히 대화를 해준 선수들에게 너희들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부족한 것은 많지만 열심히 위원생활해서 모든 선수들이 박수칠 수 있는 위원 되겠다.

-유세 중 특별한 기억 있나.

선수들이 대부분 인사를 하면 모른 척하는게 50%, 인사 해주는 선수가 45%, 나머지 5%가 '내가 당신을 왜 뽑아야 하는지 설명하라'고 하더라. 어느 누구도 내 인사를 안받아 줬는데 5%의 선수들이 고마웠다. 그들에게 비전을 설명했다. 어떤 선수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 선수들이 이런 것에 관심이 있구나', 관심없는 선수도 관심 갖게 하는게 내 역할이라는 생각 들었다. 이거 하면서 타종목에 뛰는 외국 선수와 친해졌다. 올림픽을 4번이나 나갔는데 탁구 선수 빼고는 친해질 기회 없었다. 소중한 기회였다.

-문대성 의원의 준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었나.

그때 대단하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태권도복 입고 낮뜨거운 분위기를 다 이겨내고 하셨다. 이번에도 '될 수 있는 한 많이 만나라'고 조언해주시더라. 그런 조언을 토대로 열심히 했다.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식당 앞 도로에서 어떠한 배지도 나눠줄 수 없었다. 책 하나 들고 있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인데 선수들이 호응 잘해줘서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선수 유승민과 행정가 유승민은 어떻게 다른가.

선수 유승민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면, 행정가 유승민은 눈빛이 따뜻해서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2위는 어떤 결과인가.

투표율이 낮을거라는 예상 있었다. 노란 스티커가 붙어있으면 투표한 사람이라 그것만 봤다. 내심 자신은 있었다. 다른 후보자들도 충분히 너는 받을만한 당선될만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했다. 힘을 얻기는 했지만 1인 다표기 때문에 누군가 뽑은 사람이 나도 뽑아야 하는데 마지막까지 예측 못했다. 2위라는 결과가 놀라웠다.

-룰이 어땠길래.

문대성 위원 때와 비교하면 그때는 식당에서 할 수 있었다. 바로 투표장이랑 연결돼서 거기서 발차기도 하고, 바로 투표할 수 있게 전략 만들었다. 이번에는 각 종목 유니폼도 안되고 식당 앞, 이면도로까지 구역을 제한했다. 후보를 상징하는 노란 배지도 누군가 사직찍어서 노란색 보이게 포스팅하면 안된다. 배지를 가리고 찍어야 했다. SNS에서도 제 3자가 셰어링하거나 이름을 태그해도 문제가 됐다. 제한된 룰 때문에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이번 선거를 돌아보면.

시합이 종료가 되면 후회 남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종료 순간 너무 기분 좋았다. 후회가 안남을 것 같았다. 떨어지면 억울할 것 같았는데 너무 열심히했기에 후회 안남을 것 같았다. 후회 없이 모든 것을 걸고 선수들에게 진심을 보여주는 선거였다. 밤 10시까지 항상 남아 선수들에 인사를 건냈다. 선수들이 버스타고 들어올때 졌는지 이겼는지 모른다. 표정 보고 인사했는데 인상쓰면 진 선수였다. 그게 미안했다. 나를 뽑아달라고 했지만 기분 파악을 해야했다. 그래서 말걸기도 미안했다. 끝나고 페이스북에 지겹도록 인사받아준 선수들에 고맙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황에 상관없이 맞이해준 선수들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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