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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배재국 부자,뉴욕마라톤 완주 감동스토리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5-11-03 12:53 | 최종수정 2015-11-03 12:55




'재국이와 아빠'의 뉴욕마라톤 꿈이 기적처럼 이뤄졌다.

뉴욕마라톤 주최측은 배재국군(20대전고)과 아버지 배종훈씨(50)를 위해 올해부터 듀오팀 부문을 새로이 창설했다. 30일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지 사흘만인 지난 2일(한국시각), 꿈을 향한 혼신의 마라톤, 아버지와 아들은 완주에 성공했다. 뉴욕마라톤 공식 홈페이지 확인 결과 4시간43분46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듀오팀으로 출전한 3팀 가운데 2위의 기록이다. 스무살 근육병 아들의 휠체어를 밀며, 경직된 아이의 다리를 주무르며, 아버지는 5시간 가까이 달리고 또 달렸다. 아들에게 큰세상을 보여주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뉴욕마라톤을 꿈꾸고 출전하고 완주하기까지 어느 하나 쉬운 길은 없었다. 2009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도시 뉴욕을 동경했고, 뉴욕마라톤에 출전하려고 했지만, 규정상 휠체어를 밀고 뛸 수는 없다는 소식에 좌절했다. 10월초, 대전 출신 '탁구 레전드'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지역언론을 통해 재국군의 '뉴욕마라톤' 꿈 이야기를 듣고 손을 내밀었다. 이들의 집을 방문한 이 의원은 2시간여의 기다림 끝에 재국군을 만났다. 이에리사 의원은 "나는 늘 현장을 가본다. 직접 가보고 판단한다"고 했다. 뉴욕마라톤의 꿈이 무산될 위기에서 낙담한 재국군에게 이 의원은 "설령 마라톤을 못한다 해도 뉴욕 구경만 해도 좋은 거야. 뉴욕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면 안돼. 뉴욕이 아니면, 보스턴이 될 수도 있고, 기회는 또 올 수 있다"고 달랬다. 다른 한편으론 재국군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다. 이 의원은 "뉴욕마라톤 주최측에 편지를 띄웠다. 보통은 룰을 보고 신청을 안하는데, 한국에서 의외의 신청이 들어오니 주최측에서 심각한 회의를 했던 모양이다. 마음과 정성이 통했는지, 조직위에서 답변이 왔다. 기존의 휠체어 부문 외에 재국이를 위한 듀오팀 부문을 신설했고, 이에 따라 출전이 가능하다는 통보였다." 이 의원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자'는 마음들이 통했다"며 웃었다.

우여곡절끝에 출전의 길은 열렸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남았다. 주최측은 듀오팀의 안전을 위해 '휠체어 선수는 반드시 경기용 레이싱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못박았다. 재국군의 누나 역시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상황, 빠듯한 살림 속에 600만원 상당의 경기용 휠체어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의원은 체조인 출신 김소영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재활지원센터장을 떠올렸다. 태릉선수촌장 출신의 이 의원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훈련중 장애를 갖게된 후배 김 센터장을 끔찍이 아끼고, 살뜰히 챙겨왔다.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체육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온힘을 쏟는 계기가 됐다.

이 의원은 "경기용 휠체어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정 안되면 마지막엔 내가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정치인이 생색내려고 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유관단체에서 공식적으로 후원하는 모습이 가장 가치 있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이었고, 오랫동안 '사랑의 휠체어' 후원을 해온 김소영 센터장과 뜻이 통했다. 그렇게 재국이의 뉴욕행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29일 출국을 하루 앞두고 만난 재국군과 아버지는 설렘 가득한 표정이었다. 춘천마라톤을 완주하며 경기용 휠체어 시운전도 마쳤다. 불굴의 부자는 마라톤 풀코스를 이미 7번, 국토종단도 5번이나 한 베테랑이자 환상의 짝꿍이다. 일주일에 3번씩 하루 20km 스파르타 훈련을 이어왔다. 배씨는 "나 혼자 뛰면 100m, 200m도 잘 못 뛴다. 재국이가 있어서 뛸 수 있다. 아들 이름만 불러도 힘이 난다"며 웃었다. 2005년 근육병의 일종으로, 희귀난치병인 '근이영양증' 판정을 받은 후 재국군과 아버지는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아버지는 "아이가 몸은 움직이지 못해도, 밖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단풍도 보고, 꽃길을 달리며, 아이가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진행성이긴 하지만, 함께 달리면서 예후가 훨씬 좋다고들 한다"고 했다. 재국군 역시 "아빠랑 같이 달리는 게 좋아요, 국토종단도 그렇고 마라톤도 그렇고 마음껏 보고 느끼라고 등뒤에서 밀어주셔서 감사해요"라며 웃었다. 평소 말이 많지 않은 아들은 기분이 좋을 때면 볼뽀뽀로 애정을 표현한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들 부자에게 뉴욕마라톤이 그렇게 간절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재국군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라서, 꼭 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일단 마라톤을 완주한 후, 타임스퀘어도 가보고 싶고, 자유의 여신상, 유엔본부도 보고 싶고, 반기문 총장님도 만나고 싶다." 아버지는 말했다. "첫번째 이유는 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두번째는 근육병을 알리고, 근육병 친구들에게 용기와 희망,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하루빨리 치료약이 나오길 바란다."

10시간여의 생애 첫 장거리 비행을 거쳐,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근육병 아들의 휠체어를 밀며 42.195km를 달려야 하는 아버지는 완주를 다짐했다. "우리는 일단 도전하면 포기는 안한다. 재국이도 등과 다리도 저려도 참는다. 수시로 주물러주고 서로를 격려하며 결국은 해낸다. 중간에 포기할 것같았으면 시작도 안했다." 2015년 11월, '아빠와 아들' 환상의 짝꿍이 뉴욕에서 또 하나의 꿈을 이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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