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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얼짱' 서효원(26)이 폴란드오픈 여자단식 결승에 진출했다. 만리장성을 넘었다.
마지막 세트가 될 수도 있었던 6세트 서효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서효원이 3-0으로 앞서나갔다. 웬지아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탓을 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평정심이 흔들렸다. 이후에도 자신의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3-8, 랠리 상황에서 나온 서효원의 신들린 수비와 공격은 압권이었다. 결국 11-3으로 6세트를 가볍게 따냈다.
마지막 7세트, 서효원은 거침없었다. 자신감 넘치는 공격과 한발 더 뛰는 수비로 상대를 압도했다. 2-6 상황에서 또다시 랠리가 이어졌다. 신들린 수비 직후 야심차게 꽂아넣는 서효원의 드라이브는 강력했다. 지구전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웬자이의 공이 잇달아 네트에 걸렸다. 이미 승부의 추는 기울었다. 11-5로 마지막 세트를 따냈다. 세트스코어 4대3으로 승리하며 꿈의 결승행을 이뤘다.
서효원은 11일 새벽 또한번 만리장성에 도전한다. 후쿠하라 아이를 4대2로 꺾고 결승에 오른 중국 성단단을 상대로 올시즌 2번째 우승을 노린다. 대한민국 여자탁구 톱랭커 서효원의 거침없는 도전이 시작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정)영식이가 코리아오픈은 '서효원오픈'이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탁구얼짱' 서효원(26·한국마사회·세계 32위)이 남자대표팀 절친 후배인 정영식(21·KDB대우증권)의 농담을 전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코리아오픈은 서효원에게 특별하다. '서효원'이라는 이름 세글자를 알린 대회다. 2년 전인 2011년 7월 코리아오픈이 생중계되면서 '탁구얼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희고 갸름한 얼굴, 쌍꺼풀없이 큰눈, 오똑한 콧날에 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무엇보다 '공격하는 수비수'의 저돌적인 플레이스타일에 열광했다. 포털 검색어 1위를 휩쓸었다. 소위 '깎기'만 하는 수비전형이 아니다. 파워풀한 고공서브와 허를 찌르는 공격본능을 필살기 삼았다. 32강전에서 당시 세계 8위이자 일본 톱랭커인 이시카와 카스미를 4대2로 꺾으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현정화 한국마사회 총감독이 "내가 키우는 비밀병기"라며 자부심을 표했었다.
2년 후인 2013년 4월, 서효원이 다시 코리아오픈의 중심에 섰다. '얼짱'이 아닌 '실력짱'으로 거듭났다. 7일 오후 인천 송도 글로벌대학체육관에서 펼쳐진 여자단식 결승에서 세계 9위이자 일본의 톱랭커인 이시카와 카스미를 풀세트 접전 끝에 4대3(11-8,5-11,11-7,9-11,10-12,11-5,11-9)으로 꺾었다. 오픈대회에서 난생 처음 단식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예고된 파란이었다. 6일 오후 16강전에서 세계 4위 펑톈웨이(싱가포르)를 4대1로 돌려세웠다.중국 톱랭커들이 불참한 이번 대회에서 펑톈웨이는 톱시드를 받았다. 강력한 우승후보를 꺾은 서효원의 활약을 국제탁구연맹(ITTF) 사이트도 대서특필했다. 8강에서 '대만 에이스' 정이정을 4대1로 꺾고 남녀 단식을 통틀어 한국선수로는 유일하게 4강행을 달성했다.
7일 오전 4강전 상대는 16강에서 석하정(대한항공·세계 20위)을 4대3, '아이짱' 후쿠하라 아이(세계 12위)를 4대2로 꺾고 올라온 리호칭(홍콩, 세계 58위)이었다. 서효원의 강력한 고공서브와 수비 틈틈이 날리는 예측불허 드라이브에 리호칭은 손을 대지 못했다. 서효원은 리호칭을 4대2(7-11,11-5,13-11,9-11,11-8,11-8)로 누르고 감격의 첫 결승무대에 올랐다. 서효원의 오픈 대회 최고성적은 2011년 독일오픈 4강이다. 첫 결승 무대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결승전 상대는 여전히 일본 톱랭커인 이시카와였다. 2년전 코리아오픈 스타덤을 선물해준 그녀다. 그러나 지난달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월드팀컵 클래식 일본과의 8강전 2단식에서 서효원은 이시카와에게 0대3으로 완패했다. "뭘하고 나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고 할만큼 긴장했다. 주전으로 출전해 2단식을 모두 졌다. 한국은 세트스토어 2대3으로 패했다. 지난 3월 그토록 꿈꾸던 태극마크를 처음 가슴에 단 서효원의 첫 시련이었다.
첫 국가대표 데뷔전을 정신없이 치른 후 낙담한 서효원에게 스승과 동료들은 질책보다 위로를 건넸다. "괜찮다. 이런 긴장감이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부족한 점은 고치면 된다"고 따뜻하게 격려했다. 안방에서 열린 코리아오픈에서 이를 악물었다. "국내 팬들 앞에서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살아남기로, 끝까지 독하게 버텨내기"로 작정했다. 패배의 쓴 경험이 보약이 됐다. 작전은 '닥공(닥치고 공격)'이었다. 나비처럼 깎아내리다 벌처럼 쏘아대는 '공격형 수비수'의 당찬 플레이에 이시카와도 버텨내지 못했다. 열흘 전 패배를 설욕했다. 그녀에게 스타덤을 선물한 코리아오픈은 이번엔 '힐링매치'가 됐다. 단식 여왕 자리에 오르며 스승 현정화의 후예로서 한국 여자탁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얼굴만 예쁜 선수'가 아님을 오롯한 실력으로 입증했다. 이시카와, 펑톈웨이 등 톱랭커들을 줄줄이 꺾으며 5월 생애 최고 랭킹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세계적인 수비수 김경아-박미영의 뒤를 이을 공수겸용 '트랜스포머 수비수' 서효원의 찬란한 반란이 시작됐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