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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5' 손연재VS덩센유에,인천AG 新라이벌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9-02 09:16



'야나 쿠드랍체바(러시아), 안나 리자트디노바(우크라이나), 멜리나 스타니우타(벨라루스), 덩센유에(중국), 손연재(한국)….'

1일 막을 내린 제32회 우크라이나 키예프 리듬체조세계선수권 개인종합 '톱5' 명단이다. 예상대로 1-2-3위는 러시아, 동구권 선수들이 휩쓸었지만, 이번 '톱5' 리스트엔 같한 의미가 있다. 러시아 동구권이 독식해온 리듬체조 종목에서 5위권에 동양인 선수 2명이 이름을 올렸다. 사상 유례 없는 일이다. 특히 중국 에이스 덩센유에의 '4위'는 사건으로 꼽힌다. 통상 러시아가 1-2위를 휩쓸고, 동구권 국가들이 3~5위를 나눠갖던 분위기가 달라졌다. 숨막히는 0.001점차 박빙의 승부속에 강력한 우승후보, 세계1위 마르가리타 마문(러시아)이 6위로 미끄러지는 대이변도 있었다. '15세 러시아 신성' 야나 쿠드랍체바가 '최연소 여왕'에 등극했다. '여제' 예브게니아 카나예바의 은퇴 이후 리듬체조 지형이 바뀌고 있다. 1급 상위심판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김지영 대한체조협회 강화위원장은 "국제체조연맹(FIG)이 아시아의 약진에 대해 특히 기뻐하고 있다. 축제 분위기"라고 현장의 열기를 전했다.

중국 에이스 덩센유에의 약진

1992년생 덩센유에는 내년 인천아시안게임 손연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꼽혀온 선수다. 중국 광시성 출신으로 6세때 리듬체조에 입문했다. 알리야 가라예바(아제르바이젠)의 팬인 그녀는 6년전인 2007년 일본 이온컵을 통해 시니어 데뷔전을 치렀다. 2009년 중국 랭킹 1위에 올랐고, 2011년 유니버시아드대회 후프 종목 동메달, 아시아선수권 개인종합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세계 무대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손연재가 11위를 기록한 2011년 몽펠리에세계선수권에서 덩센유에는 13위에 올랐다. 손연재가 개인종합 5위로 약진한 런던올림픽에서 덩센유에는 예선 11위에 그쳤다. 간발의 차로 톱10까지 진출하는 결선무대를 밟지 못했다.

올시즌 그녀는 달라졌다. 올해초 리스본월드컵 리본 결선에서 3위에 오르며 생애 첫 월드컵 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즈벡 타슈켄트아시아선수권에서 손연재는 개인종합, 후프, 곤봉에서 3관왕에 올랐다. 덩센유에는 개인종합 3위에 올랐지만, 손연재가 놓친 볼과 리본 금메달을 모두 차지했다. 후프, 곤봉에선 손연재에 이어 은메달 2개를 따냈다. 손연재가 개인종합 6위에 올랐던 카잔유니버시아드에서 덩센유에는 8위에 올랐지만, 전종목 결선무대를 밟으며 선전했다.

2년만의 세계선수권 무대에서 기대 이상의 연기를 선보였다. 중국적 색채가 묻어나는 개성있는 루틴과 거침없는 연기로 관중을 매료시켰다. 월드클래스의 '속도'와 매끄러운 연결력, 능수능란한 수구조작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개인종합 결선, 손연재와의 '막판 4위' 전쟁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접전이었다. 덩센유에는 '세계 톱5'의 부담감을 짊어진 손연재와 달리, '도전자'의 자세로 경기를 즐겼다. 덩센유에는 첫종목 볼(17.450점)과 곤봉(17.916점)에서 선전했다. 2종목 합계 35.366점으로 리본(17.516점), 후프(17.783점) 연기를 마친 손연재(35.299점)를 0.067점 앞섰다. 그러나 손연재가 볼에서 17.683점의 고득점을 받고, 덩센유에가 리본에서 17.108점에 그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손연재(52.982점)가 덩센유에(52.474점)보다 0.549점 앞섰다. 결국 마지막 종목이 희비를 갈랐다. 덩센유에가 후프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17.900점의 고득점을 찍었다. 총점 70.374점, 손연재(52.433점)가 곤봉에서 17.392점만 넘으면 4위로 올라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손연재는 올시즌 곤봉에 강했다. 지난 5월 벨라루스월드컵에서 17.9333점으로 은메달을 따냈고, 이달 초 상트페테르부르크월드컵에선 18.016점으로 4위에 올랐다. 그러나 마지막 종목에서 평소보다 낮은 17.350점에 그쳤다. 총점 70.332점, 덩센유에가 0.042점차로 손연재를 눌렀다. 중국 리듬체조 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4위의 쾌거를 이뤘다. 개인종합에서 덩센유에가 손연재를 이긴 것 역시 처음이다.

손연재 VS 덩센유에 아시아 경쟁구도 형성

손연재의 키예프세계선수권 5위는 한국리듬체조 사상 최고의 성적이다. '32위(2010년)→11위(2011년)→ 5위(2013년)'의 약진, 런던올림픽 '톱5'를 재확인한 의미도 크다. 컨디션 난조 및 전날의 부진을 극복하고 끝까지 선전해 '톱5'를 지켰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 것은 마지막 '한끗차'를 뛰어넘지 못한 부분이다. 러시아 에이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불가리아 톱랭커 틈바구니에서 랭킹 한계단 올리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다. 손연재가 1일 귀국 인터뷰에서 "0.001점 차"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0.001점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 앞으로 2~3배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종목, 0.042점 차로 4위가 결정됐다. 덩센유에는 17.900점으로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해냈고, 손연재는 17.350점으로 4종목 중 최저점을 기록했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덩센유에의 세계 4위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FIG, 러시아체조협회는 손연재, 덩센유에의 동반선전을 반기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독식'을 가장 싫어한다. 전세계 스포츠인의 축제인 올림픽에서 절대 강국을 경계하는 것이다. 한때 탁구, 태권도 등이 퇴출종목에 거론됐던 것 역시 이때문이다. 러시아가 독식해온 리듬체조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흐름속에 '아시아 요정'들의 활약은 반갑다. '극동의 나라'들도 사랑하는 세계인의 스포츠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좋은 예'다.

'덩의 약진'은 리듬체조계는 물론 손연재에게도 희소식이다. 1년 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불꽃 튀는 금메달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아시안스타'의 이름으로 나홀로 고군분투했던 손연재에게 '호적수'가 생겼다. 경쟁자가 없는 종목은, 재미도 의미도 없다. 덩센유에의 약진은 자칫 성장이 정체될 수 있는 '독종' 손연재에게 강력한 동기부여 및 자극제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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