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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스타' 윤경신(39·현 두산 감독)의 은퇴에 한국 남자 핸드볼은 탄식을 내뱉었다.
전승원이 두각을 드러낸 것은 핸드볼을 시작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소년체전에서다. 4경기서 67골을 넣으면서 성지초에 창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을 안겼다. 초등학교 핸드볼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는 성지초의 우승은 일대 사건이었다. 4강전에서는 전국 최강인 태백 장성초를 무너뜨렸고, 결승전에서는 전남 해제초를 꺾었다.
타고난 신체조건이 비결이다. 키는 무려 1m82로 성인과 맞먹는다. 볼은 한 손에 감싸쥘 수 있을 정도로 긴 손을 갖고 있다. 버스를 탈 때 '왜 고교생이 초등학생 요금을 내느냐'고 핀잔을 듣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소년체전에 나설 때보다 4cm가 컸다. 지금도 한 달에 1cm씩 성장을 하고 있다. 어머니 최미영씨(44)는 "어릴 때부터 너무 커서 솔직히 무섭더라. 봄에 산 옷이 가을에는 안맞고 발이 빨리 커 운동화도 오래 못 신는다. 따라가기가 벅차다"고 털어놓았다. 박창기 성지초 코치(44)는 "노력과 성장만 더해진다면 중-고교 무대 뿐만 아니라 성인 무대도 주름 잡을 만한 타고난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는 "핸드볼은 키도 중요하지만 볼을 감싸쥘 수 있는 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부분에서 (전)승원이는 타고났다"며 "머리도 좋아 동료를 이용한 지능적인 플레이도 뛰어나다"고 분석했다.
스포츠 소년으로 첫 발을 내딛는 과정은 쉽지 않다. 기량과 신체조건도 중요하지만, 올곧은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건강한 정신이 갖춰져야 실력발휘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다. 전승원에게 핸드볼은 인성교육의 일환이었다. 박 코치는 "또래에 비해 덩치가 큰데다 공부도 곧잘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오해나 사건에 휘말려 소위 '일진' 노릇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담임교사의 상담을 받은 김종빈 전 감독(49)과 박 코치가 설득 끝에 전승원을 붙잡았다. 핸드볼팀에 입단한 뒤 곧바로 대회에 나가 실전을 뛰었다. 전승원이 마음을 다잡고 운동에 심취하게 된 계기였다. 운동을 하면서 학교 성적도 그대로 유지가 됐으니 일석삼조였다. 한때 핸드볼 선수 생활을 했던 큰아버지도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줬다. 최씨는 "사실 일반 학원보다 학교에서 운동 시키는게 또래들과 어울리기 좋을 것 같아 말리지 않았다. 대회에 나간 뒤 걱정이 되어 말리기도 했으나, 본인 스스로 너무 핸드볼을 좋아한다. 이제는 지켜볼 뿐"이라고 말했다.
위기도 있었다. 전승원은 지난해 초 제주도 전지훈련을 마친 뒤 동료 두 명과 함께 팀을 뛰쳐 나왔다. 박 코치의 혹독한 조련에 어린 선수들이 버텨내지 못했다. 박 코치가 40일 동안 달래서 겨우 마음을 돌려놓았다. 박 코치는 "여러가지를 많이 느끼게 된 계기가 됐고, 선수도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고 돌아봤다.
대통령 취임식 초대, 어머니의 걱정
어머니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승원은 당찬 포부를 밝혔다. "다른 유명한 운동도 있지만, 이왕 핸드볼을 시작했으니 핸드볼로 성공하고 싶다. 윤경신 아저씨처럼 국가대표도 되어 금메달을 따고 해외무대에도 서보는게 꿈이다." 주변의 관심이 아직은 낮설고 부담스럽지만 자신을 채찍질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전승원은 "주변에서 칭찬해 주시지만, 아직 배울 것이 더 많다. 당장 중학교 형들은 신체조건이 다르다. 기량도 좋다. 노력해야 한다"면서 "대구에서 동계훈련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왔다. 더 열심히 노력해 꼭 윤경신 아저씨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직까지 전승원은 다른 또래보다 그저 큰 선수에 지나지 않는다. 설익은 플레이와 체력 향상 등 배울 점이 더 많다. 그러나 지금처럼 꿈을 잃지 않는다면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10년 뒤 한국 남자 핸드볼이 윤경신을 뛰어넘는 '거포'의 출현에 환호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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