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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컬링, 기적을 일구어내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2-03-25 15:58


기적이다. 관계자들마저도 예상치못했다. 그저 예선만 통과해도 목표 초과달성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승리를 일구어갔다. 세계적인 강호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렸다. 어느새 세계 최정상급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캐나다 레스브리지에서 열린 2012년 여자컬링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선 여자대표팀 이야기다.

당초 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2002년 9전 전패, 2009년에는 3승8패(10위), 2011년 2승9패(11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세계선수권대회 첫 경기였던 17일 체코전에서 6대3으로 졌을 때만 해도 '역시나'였다.

하지만 이어진 경기에서 완전히 팀이 달라졌다. 세계 최강 스웨덴을 9대8로 꺾었다. 이어 이탈리아(6대5), 스코틀랜드(7대2), 미국(8대3), 덴마크(9대8), 중국(7대5)을 차례차례 눌렀다. 홈팀 캐나다와 스위스에게는 졌지만 독일과 러시아를 누르면서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전세계 컬링계가 놀랐다. 언론들은 저마다 '한국의 선전'을 보도하기 바빴다.

선수 구성을 보면 눈물겹다. 지난해 대한컬링경기연맹에 등록된 여자 선수는 278명이 전부다. 남자선수를 포함해도 681명밖에 되지 않는다. 마땅한 구장도 없다. 대표팀의 공식 훈련장인 태릉선수촌 내 컬링 전용구장은 전문 관리인이 없어 상태가 좋지 않다. 습도와 온도 등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북유럽 경기장들과 비교할 수도 없다.

선수들은 열정과 근성으로 열악한 환경을 이겨냈다. 신미성(34)·이현정(34)·김지선(25)·이슬비(24)·김은지(22·이상 경기도 체육회)으로 이루어진 선수들은 이를 악물었다. 1998년 동호회를 통해 컬링을 접한 맏언니 신미성 이현정은 한국 여자 컬링의 산증인이다. 당시에는 변변한 경기장도 없었다. 각자 돈을 모아 광운대 아이스링크를 빌려 기본기를 익혔다. 전용 신발이 없어 일반 운동화 바닥에 본드로 아크릴을 붙이고 나서야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던 김지선과 김은지는 고교 때 컬링으로 전향했다. 김지선은 2007년 중국 하얼빈 대학에서 1년간 '컬링 유학'을 했다. 열정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은지 역시 매일 망가진 브러시를 재활용하며 훈련에 임했다. 이슬비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려움 끝에 한국 여자 컬링은 우뚝 섰다. 25일 홈팀 캐나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했다. 이어 펼쳐진 준결승전에서 비록 스위스에게 지며 아쉽게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혼을 담은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몸소 증명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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