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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잡초 복서' 전찬중의 반듯한 인생살이

최재성 기자

기사입력 2018-08-29 17:54

<조영섭의 복싱 히스토리> '잡초 복서' 전찬중의 반듯한 인생살이

영국은 근대 복싱의 발상지로 꼽히는데 제임스 피그가 1718년 런던에서 복싱아카데미를 개설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전 세계로 확산된다. 한국은 1929년 9월 성의경 선생에 의해 조선권투구락부가 창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프로복싱은 65년 12월 서강일에 의해 첫 포문이 열린 이후 43명의 세계챔피언이 탄생했고, 아마복싱은 48년 런던올림픽에서 한수안 선생에 의해 첫 정상 도전이 시작된 이래 3대 메이저대회(월드컵, 올림픽,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7명의 선수권자가 탄생한 복싱 강국이었다. 하지만 아마복싱계에선 2005년 세계선수권 이옥성의 금메달 이후, 프로복싱계(남자)에선 2006년 지인진의 WBA 페더급 챔피언 등극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명의 월드 챔피언도 배출하지 못하고 동반 침체에 빠져 있는 게 한국복싱의 현주소이다. 다시 한번 한국 복싱의 부활을 기대하며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오늘 복싱 히스토리의 주인공은 한국 주니어페더급 챔피언이자 동양 1위라는 한직(?)에 머물렀던 전찬중이라는 복서이다. 그는 80년 프로에 진출하여 6년 2개월 동안 35전을 뛰었는데 특이한 점은 단 한 차례의 국제 경기도 없이 국내 최정상급 복서들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잡초 복서'였다는 사실이다. 35전을 전부 국내 선수와 치른,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기록은 16전을 연속해서 4회전 경기를 치른 박종배의 기록과 함께 국내 진기록에 꼽힌다. 혹자는 전찬중을 속칭 '듣보잡'이라 폄훼할지 모르겠지만, 양파 껍질 벗기듯이 그의 기록을 살펴보면 순도 높은 복서들과의 대결에서 검증된 실력만큼은 챔피언 감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현역 시절 화려한 전적보다는 순도 높은 승부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잡초 복서' 전찬중(가운데)이 전 WBA 페더급 챔프 박영균(왼쪽), 후배 복서 김민기와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그를 만나러 후배 복서인 전 WBA 페더급 챔피언 박영균과 함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인창각이라는 중화 요릿집으로 갔다. 이곳은 그가 은퇴하여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운영해 온 삶의 터전이다. 전찬중은 58년 전북 고창 태생으로 74년 상경하여 노병엽 관장이 운영하는 상원체육관에 입관한 후 80년 프로에 전격 진출한다. 그는 영세체육관 속성상 경기가 잡히면 상대가 누군지 파이트머니가 얼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천후로 경기를 치른 불멸의 파이터였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두 체급에 걸쳐 국내 챔피언에 오른 문명안을 비롯해 세계 챔피언을 지낸 오민근, 정기영, 김지원, 동양 챔피언을 지낸 황재용, 최연갑, 박병수, 국내 챔피언을 지낸 이오형, 하경주, 김호만, 김원경, 황현재, 신인왕 출신의 김동영, 장진석, 양승돈, 강인길 등과 사투를 벌여 22승(13KO승) 6무 7패의 기록을 남겼다. 당시 국내 복서들은 일본 및 동남아 복서들이 주류를 이룬 동양권 복서들에 비해 수준이 월등히 높았다. 일례로 유흥석이라는 국가대표 출신은 27전을 뛰면서 5차례 국내 복서와의 대결에선 이동복에게 패하고 김용대에게 가까스로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2승 2무 1패를 기록했지만, 22차례 치른 국제전에서는 철만난 메뚜기처럼 20승(16KO승) 2무를 질주했다. 이 기록과 대조해 보면 전찬중의 수준 높은 경기력을 유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 주니어페더급 챔피언(동양 1위) 시절의 전찬중.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복서의 레벨은 화려한 전적보다는 누구와 어떻게 싸웠느냐로 판단한다. 내실 없이 쌓은 화려한 전적은 마치 사슴이 화려한 뿔을 자랑하다 그 뿔이 부메랑이 되어 나무에 걸려 곤욕을 치르듯이 복서들도 이와 동일하게 결정적인 경기에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전찬중은 81년, 훗날 WBA 밴텀급 챔피언에 등극한 박찬영과 무승부를 기록한 경기와 이듬해 IBF 페더급 챔피언을 지낸 정기영과의 경기에서 극적인 판정승을 거둔 경기를 훈장처럼 간직하고 있는 명승부라고 회고한다. 또한 가장 실력이 출중했던 복서는 박찬희를 아마추어 때 꺾었던 문명안 선배라고 말했으며, 아쉬웠던 경기는 83년 벌어진 김지원과의 국내 타이틀 5차 방어전이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국내 챔피언이자 동양 1위인 전찬중은 국내랭킹 5위인 국가대표 출신 김지원과의 맞대결에서 패하면서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총 7패 중 4패를 이 경기 이후에 기록하게 된다. 반면 김지원은 전찬중과의 대결 이후 한 달 만에 동양 챔피언에 올라 4차 방어 성공과 함께 타이틀을 반납한 후 85년 1월 서성인을 10회 TKO로 잡고 IBF 주니어페더급 챔피언에 오른다. 그리고 4차 방어전 성공과 함께 6만 달러의 파이트머니를 보장받고 폴 페라리와의 5차 방어전을 준비중일 때 전찬중은 고개를 숙인 채 은퇴를 선언했다. 단 한 경기가 두 복서의 운명을 극명하게 갈라놓은 변곡점이 된 것이다. 당시 전찬중은 이정하 시인의 '너는 눈부시지만 난 눈물겹다'란 시집 제목처럼 착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전찬중은 선수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우유배달, 포장마차, 인쇄소 직공, 도축업, 자장면 배달 등으로 종잣돈을 착실히 마련, 은퇴 후 경기도 구리에 중화요리점을 차려 인생 2회전을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점이다. 이후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세 자녀 모두 대학을 졸업시킨 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한편, 전찬중과 비슷한 시기에 사회활동을 시작한 김지원은 연예계 진출을 빌미로 5차 방어전을 앞두고 전격 은퇴한 후 자유당 시절 정치 주먹 유지광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대명'에 4200대1의 경쟁을 뚫고 캐스팅되어 연예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육사 출신 부친 밑에서 풍요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연극계 대모 김지숙 씨의 동생이자 영화 '놈.놈.놈', '밀정', '반칙왕' 등으로 유명한 김지운 감독의 형이다.

전찬중은 구리시 인창동에서 '김민기 복싱클럽'을 운영하는 체육관 후배 김민기 관장의 롤모델이자 아이콘일 정도로 정도를 걷는 복싱인이다. 전찬중의 상원체육관 후배이기도 한 김민기 관장은 서울체고, 한국체대, 대전중구청을 거치면서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를 두루 거친 엘리트 복서로, 스몰급부터 슈퍼헤비급에 이르기까지 전국선수권에서 9체급을 석권한 전무후무한 복서다. 8체급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파퀴아오(필리핀)에 비견할 수는 없을지라도 대단한 기록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78회 전국체전에서 슈퍼헤비급으로 출전, 현역 국가대표인 안정현과 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인 채성배, 그리고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백현만까지 차례로 완파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주인공이다. 이런 명복서 출신의 김민기도 한때 건설업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뜻하지 않은 암초에 좌초되어 사업이 풍비박산한 후 절망에 젖어 있을 때 자문을 구한 선배가 바로 전찬중이었다. 그리고 전찬중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라."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6년 전 체육관을 차려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문득 서산대사의 시구절이 생각난다.


'눈 덮인 벌판을 걸어갈 때는 감히 그 발걸음을 난잡하게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이날 동행한 전 WBA 페더급 챔피언 박영균도 선배 전찬중이 걸어온 길을 음미하면서 많은 산지식을 습득했으리라 생각한다.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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