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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인터뷰]이상호"김연아 선수처럼 세상에 스노보드 알리고싶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8-03-02 05:59


이상호가 한국 스키 설상 종목 최초로 메달을 획득했다. '배추보이' 이상호는 24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스키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태극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상호. 평창=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8.02.24

사진제공=장미란재단

사진제공=장미란재단

'배추보이' 이상호(23·한체대)는 지난달 24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 스노 경기장에서 벌어진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한민국이 설상 종목에서 무려 58년만에 따낸 감격의 첫 메달이다.

거침없는 질주로 은메달을 확보한 준결승전은 명불허전이었다. 이상호는 불리한 블루코스에서 출발했다. 레드코스의 잔 코시르(슬로베니아)와 예측불허, 막상막하의 레이스를 펼쳤다.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던 이상호가 필사적으로 손을 내뻗었다. 육안으로 식별하기조차 힘든 0.01초차 '박빙' 은메달, 극적인 결승 진출을 확정한 후 뜨겁게 환호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청춘에게 기적같은 은메달이 찾아왔다.

지난 25일 평창올림픽 결제기술 공식 파트너 Visa의 도움으로 강릉선수촌 앞 비자코리아 사무실에서 안방에서 열린 생애 첫 평창올림픽에서 최고의 순간을 빚어낸 '배추보이' 이상호를 만났다.

# 스노보드는 내 운명

'배추보이'라는 별명은 이상호가 고향인 강원도 사북, 고랭지 배추밭에서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하면서 붙은 별명이다. "스노보드를 탈 때마다 느낀다. 이건 진짜 내 일이다. 스노보드는 내 운명"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스노보드를 타는 일이 늘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에 대해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끼면 너무 괴롭잖아요. 제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스노보드가 직업이 되고 나서 좋아하는 스노보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참 힘들긴 하더라고요."

행복한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하지만 해답 또한 스노보드에 있었다.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방법은 결국 스노보드를 타는 것 뿐"이라고 했다. "따로 이겨내는 방법은 없어요. 결국 스노보드 때문에 힘들어도, 다시 스노보드를 타면 기분이 계속 좋아지는 순환 작용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겨낼 수 있어요."

# 첫 올림픽

이상호는 "이번 평창올림픽이 나의 첫 올림픽이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기 때문에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평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자신감 넘치는 이상호에게 첫 올림픽 무대의 긴장감에 대해 물었다. "언제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자신의 큰 무기"라고 말하는 그였지만, 올림픽의 중압감은 달랐다. "시합 전날까지만 해도 자신 있었지만, 막상 시합 당일 올림픽 무대에 서자 긴장이 많이 됐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경기 후에 자신을 믿어준 수많은 이들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배추밭 스노보드의 길을 열어준 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아버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제가 국가대표가 되기 전에는 아버지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아버지와 함께 외국선수들의 영상을 보면서 저만의 라이딩을 만들었거든요. 아버지는 제 개인코치나 다름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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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노보드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이상호는 자신의 롤모델로 '피겨여왕' 김연아를 꼽았다. "사실 김연아 선수를 모르면 간첩소리를 듣는 것처럼, 이제는 누구나 피겨스케이팅과 김연아 선수를 알잖아요. 김연아 선수 덕분에 후배 피겨 선수들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운동한다는 게 정말 부러워요."

이상호는 "스노보드는 대중화가 굉장히 많이 돼 있는데 반해, 알파인 스노보드라는 종목에 대해 관심이 적은 상황이 아쉽다"고 했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을 알린 것처럼 저도 알파인 스노보드라는 종목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선후배 동료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운동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 손톱에 칠한 금빛 열망

이상호의 엄지손톱 네일아트는 은메달 후 주목받았다. 오른쪽 손톱에는 태극기, 왼쪽 손톱에는 금색 바탕 위에 스노보드를 타는 형상을 새겼다. "손톱에 뭔가 발라본 건 처음이었다"며 네일아트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올림픽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겠다는 다짐이었다. 알파인 스노보드의 변방이었던 대한민국이 알파인 스노보드의 정상을 찍었다는 것을 유럽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목표 삼은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에 대한 아쉬움을 살짝 드러내기도 했다. "금메달 따고 싶어서 금색으로 칠했는데, 다음에 금메달 따려면 다섯 손가락에 다 발라야겠어요."

# 저도 청설모 잡아봤어요

이번 동계올림픽의 깜짝 스타 중 하나는 바로 알파인 스노보드 경기중 난입한 '청설모'다. 청설모 한 마리가 갑자기 경기장으로 들어와 선수의 보드와 충돌할 뻔한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었다. 이상호는 과거 연습 중에 청설모와 충돌할 뻔한 경험담을 유쾌하게 전했다.

"3년 전 연습 라이딩 때였어요. 턴을 시작하고 이미 방향을 틀 수 없는 상황인데 청설모가 멀리서 제 쪽으로 엄청 빨리 오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제 보드에 치일 뻔 했는데, 청설모가 다행히 제 손에 걸렸어요. 손으로 잡아서 얼른 밖으로 던져줬죠. 깜짝 놀랐었는데, 청설모가 말랑말랑했던 게 기억에 남네요."

# '이상호' 슬로프

이상호가 은메달을 딴 휘닉스파크의 슬로프는 다음 시즌부터 '이상호 슬로프'로 이름을 바꾼다. 이상호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제 이름을 딴 슬로프에 대해 듣고 나서,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일단 직접 봐야 실감이 날 것 같아요. 이상호 슬로프를 제 눈으로 보고 직접 보드를 타본 후에야 실감이 날 것 같아요."

이상호는 캐나다의 선수의 이름을 딴 슬로프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캐나다에 제시 제이 앤더슨이라고 유명한 선수의 이름을 딴 슬로프가 있어요. 그런데 제시 제이 선수가 그 슬로프에 갈 때마다 항상 헷갈린다고 그래요. 사람들이 막 '제시제이다!'고 말하면 본인 말하는 줄 알고 기쁜 마음에 쳐다봤다가, 알고 보니 슬로프 이름을 말한 거였다고 그러더라고요. 다음 시즌부터는 저도 '와! 이상호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스노보드 불모지에서 무한 자신감, 긍정의 마인드로 기어이 기적같은 은메달을 따낸 이상호에게 치열한 세상을 버텨내는 또래의 청춘을 향한 한마디를 부탁했다. 이상호는 교생실습에 나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제가 또래의 친구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정해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진짜 간절하게 마음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리고 간절하게 원하는 걸 이룰 만큼 노력한다면, 정말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에요. 혹시 얻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또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에요."


김태운 장미란재단-Visa 평창대학생기자단 기자(서울대 사회학과), 정리=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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