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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소녀는 가족들 손을 잡고 참여한 겨울방학캠프에서 스케이트를 처음 탔다. 재미를 느꼈다. 소녀는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서울 혜화초 3학년 때 경기도 분당초로 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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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무대도 순식간에 평정했다. 2014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여중부에서 500m를 포함해 3000m, 3000m 계주까지 하루에 금메달을 세 개나 휩쓸었다. 동급생을 가볍게 압도하는 날렵한 코너링이 일품이었다.
대회를 마친 뒤 최민정은 여고생이 됐다. 언니들은 한 수 아래였다. 2014∼15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세계무대 점령은 최민정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숙제였다. 2015년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주변에서 '천재소녀'라고 불렀다. 그러나 정작 최민정은 '천재'라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쉽게 얻은 왕관은 단 한개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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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걸었다. 최민정에게 '위기'는 남의 일 같아 보였다. 2016~2017시즌 ISU 월드컵 1~4차전에서 매 대회 금메달 2개씩을 목에 걸었다.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선 1500m와 3000m 릴레이에서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시련 없이 피는 꽃은 없었다.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6위에 머물렀다. 아쉬움만 남았다. "삿포로아시안게임은 처음 치르는 종합 대회였어요. 그 때 '책임감은 갖되 부담감은 덜 갖자'고 마음먹었어요. 편하게 하려고 했죠. 그런데 세계선수권은 아니었어요. 2연패를 한 뒤에 많은 관심을 받았고, 개인적으로 욕심을 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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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받아본 성적표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최민정이 빠르게 정상 궤도로 올라올 수 있었던 힘은 현실부정이 아닌 인정이었다. "결국은 제 준비가 부족했던 거죠. 준비가 잘 돼 있었다면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도 흔들리지 않았을 거에요. 컨디션도 선수가 조절해야 할 몫이잖아요."
최민정에게도 올림픽 금메달은 최고의 영광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생애 첫 올림픽은 최민정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이었다. "긴장도 되고 설레요." 그래서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 '표정부자'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풍부한 감정을 소유한 최민정이지만, 링크에 들어서면 '포커페이스', 그 자체다. 스무살 소녀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책임감 때문이다. "저는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경기에 나서잖아요. 책임감이 있어요. 당연히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부담은 있지만 경기가 끝난 뒤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바람대로 최민정은 웃었다. 17일 여자 1500m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다. 무엇보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에 빛나는 '롤모델' 진선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3관왕을 향한 첫 단추를 끼웠다.
최민정은 올림픽이 끝나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더 큰 꿈을 위해 미뤘던 것에 '도전'(?)한다. 대학생 신분으로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것이다. 태극마크를 내려놓으면 최민정은 여지없는 스무살 소녀다.
강릉=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