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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악몽이길 바란 적이 있는가. 힘든 꿈에서 어서 깨어나길, 멍한 느낌으로 소원해 본 적이 있는가. 이내 도망칠 곳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은 지옥이 된다.
선뜻 입을 떼기 힘들었다. 겨우 이 말부터 물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물었다. "괜찮냐?"고. 덤덤하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아요." 정말이었다. 딱 그날 뿐이었단다. 다음날 눈을 뜬 이준형은 평소와 다름 없이 웃었고, 늘 그랬던 것처럼 스케이트장으로 향했다. "다음날부터 괜찮아졌어요. 원래 잘 털어내는 편이거든요." 기자를 향한 너털웃음에 배려가 묻어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아픔을 겪으며 오늘에 도달한 그다. 2014년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화려한 주니어 생활을 보냈지만 시니어 전환(2015년) 이후 고난의 연속이었다. 승승장구할 준비를 마친 이준형에게 잇단 부상이 찾아왔다. 2015년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쳤고 디스크로 악화됐다. 그 해 말 훈련 중에는 스케이트날에 오른쪽 정강이를 찔려 여덟 바늘을 꿰맸다. 고비마다 발목을 잡은 부상 여파로 빙판 위에서는 부진이 이어졌다.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삶이 그렇듯 마지막 하나까지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신이 던진 시련 속에서 '인간' 이준형은 서서히 강해졌다. "계속된 부상을 겪으며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더라구요.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조금씩 강해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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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같은 순간, 그래도 이준형은 시상식이나 갈라쇼에서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대기실에서 한번 울었어요. 끝까지 참으려고 했는데…. 우는 모습이 별로 보기 안 좋을 것 같았거든요." 씩씩하게 버티던 이준형은 '절친' 김진서를 만나자마자 무너졌다. "일정을 마치고 (김)진서를 봤어요. 진서가 은퇴한다고 하기도 했고, 여러가지가 생각 나더라고요."
집에 돌아가서도 아쉬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현실감 없이 붕 떠있던 이준형에게 다시 땅에 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주변인들의 위로였다. "위로 메시지를 엄청 받았어요. 다들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다 안다, 올림픽에 나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위로해주시더라고요. 엄청 큰 힘이 됐죠." 그 중에는 '여왕' 김연아의 위로 문자도 있었다. "누나가 '주변에서 우리가 가볍게 했던 말이 네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 것 같다. 나도 올림픽 전에 힘들었다. 고생했다'고 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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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시작하는 첫 걸음, 차준환에게 축하 문자를 보냈다. "'축하한다. 항상 열심히 하자'고 보냈어요. '고맙다'는 답장이 왔더라고요."
굳이 올림픽을 외면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딴 티켓이라는 뿌듯함이 있어요.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면서 준환이를 응원할 생각이에요. 준환이가 워낙 잘하고 있으니 지금처럼 꾸준히 열심히 하면 분명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올림픽 출전에는 실패했지만, 이준형의 피겨인생은 계속된다. 그는 여전히 피겨가 재밌다. "코치인 어머니 영향으로 피겨를 시작했지만, 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운동 보다는 예술에 가깝다는 점이 매력적이죠." 성공하지 못했던 쿼드러플(4회전) 점프도 정복해보고 싶다. 적지 않은 나이인 만큼, 은퇴 후 계획도 생각해뒀다. 자신의 장점인 표현력을 살리기 위해 '안무가'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선수' 이준형은 여전히 올림픽을 꿈꾼다. "선수생활을 가능한 길게 해보고 싶어요. 가능하면 다음 올림픽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신은 한쪽 문을 닫을 땐 반드시 다른 한쪽 문을 열어둔다고 했다. 열린 문을 찾느냐는 인간의 의지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이성과 의지로 다시 시작할 동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뛰는 선수에게 보내는 박수는 성공이 아닌 의지를 향한 응원가다. 이준형은 다시 일어서 뛸 준비를 마쳤다. 사람이 아름답다. 이준형도 그렇다. 그의 새로운 도전에 진심을 담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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