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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울어버린 '사격의 신', 그도 사람이었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6-08-11 21:41


진종오 선수가 10일 오후 (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데오도루 올림픽 사격장에서 열린 남자 50m 권총 시상식에서 눈을 비비고 있다./2016.8.10/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k

진종오가 10일 오전 (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데오도루 올림픽 사격장에서 열린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2016.8.10/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H

진종오(37·KT)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하는 선수다.

갈수록 커지는 사람들의 기대를 언제나 만족시켰다. 룰이 바뀌어도, 경쟁자가 늘어가도 사람들은 오로지 금메달만을 외쳤다. 그럴수록 부담됐을 진종오는 더욱 냉정해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정확하게 표적을 맞추는 그에게 별명이 붙었다. '사격의 신.' 경기장에서는 마치 돌부처 처럼 그 어떤 감정이 없는듯 했던 진종오. 그랬던 그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들었다. 그 어느때보다 힘들었던 올림픽, 최고의 순간에 그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신의 눈물. 그래, 사격의 신도 인간이었다.

진종오가 또 한번 해냈다. 진종오는 11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리우 올림픽 슈팅 센터에서 열린 2016년 리우올림픽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극적인 뒤집기로 또 한번 정상에 올랐다. 본선을 1위로 통과한 진종오는 결선에서 고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괜히 '사격의 신'이 아니었다. 6.6점의 실수를 딛고 대역전 드라마를 일궈냈다. 6위부터 1위까지 계단을 오르듯 차근차근 올라서며 결국 한국에 네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진종오는 이번 금메달로 4개의 대기록을 세웠다. 우선 한국 올림픽 역사상 첫 개인전 3연패다. 지금까지 2연패(전이경 황경선 이상화 김기훈)는 있었지만 3개 대회 연속 금메달은 없었다. 진종오는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또 사격의 120년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전 한 종목 3연패를 이뤘다. 한국 올림픽사와 세계 사격사를 새로 썼다.

또 진종오는 '양궁의 레전드' 김수녕이 갖고 있는 한국 선수 올림픽 최다메달(6개·금4 은1 동1)과 타이를 이뤘다. 진종오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4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뿐만 아니다. 김수녕과 '쇼트트랙 여제' 전이경이 갖고 있는 한국 선수 최다 금메달 기록(4개)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범위를 아시아로 넓히면 왕이푸 이후 두번째로 아시아 사격 역사상 6개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진종오가 10일 오전 (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데오도루 올림픽 사격장에서 열린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과녘을 조준하고 있다./2016.8.10/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H
돌아보면 진종오에게 지난 4년은 부담감과의 싸움이었다. 특히 올림픽 3연패에 대한 부담은 진종오를 계속 짓눌렀다. 그는 "사격을 하지 않고 싶을 만큼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인터넷까지 피했다. 제로 베이스에서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되는 결선 방식은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진 진종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제도였다. 자칫하면 삐끗할 수 있다는 스트레스가 진종오를 괴롭혔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첫 금은 진종오'라며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대회가 가까워지자 그 부담감은 절정에 달했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진종오가 오죽하면 후배 김장미에게 이렇게 말했을까. "많이 힘들지? 나도 죽겠어."

부담감은 결국 최악의 결과를 만들었다. 7일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아쉽게 5위에 머물렀다. 반전이 필요했다. 이대로라면 50m 권총도 쉽지 않았다. 진종오의 결론은 '진종오답게' 였다. 철저하게 짜여진 생활 대신 자유롭게 활동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잤다. 혜민스님의 책을 읽으며 마음도 다스렸다. 기분 전환도 했다. 검정색 모자 대신 총, 역도화와 같은 색깔인 빨간색 모자를 꺼냈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 쏘기로 했다. "남을 위해 보여주는 사격이 아닌 나를 위한 사격을 했다. 10m에서도 보여주려는 사격이 실수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훈련했다. 여태껏 했던 것처럼 '진종오처럼 쏘자'란 마음으로 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 진종오 다운 슈팅이 빛을 발했다. 진종오는 기적 같은 드라마로 전인미답의 고지에 올랐다. 진종오는 "이번이 3연패인데 지금까지 걸었던 금메달 중 가장 무겁고 값진 금메달이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고, 가장 부담스러웠던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옆에서 너무 많은 응원을 해주셨고, 나 역시 금메달 갖고싶었다. 사람인지라 욕심 때문에 컨트롤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값지고 힘든 올림픽이었다"고 했다.


더이상 오를 곳이 없는 진종오지만 아직 도전을 멈출 생각이 없다. 그는 "후배들에게 미안하지만 은퇴할 마음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어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자제해주셨으면 한다. 정정당당히 올라온 무대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격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사격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전히 배가 고픈 진종오는 꿈도, 해야할 일도 많다. 사격 관련 서적도 써야 하고, 언젠가 지도자의 길도 걸어야 한다. 그래서 더 오래 뛰고 싶은 그다. 이날 흘렸던 '신의 눈물'이 위대한 도전길에 단비가 될 것이다.


진종오 선수가 10일 오후 (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데오도루 올림픽 사격장에서 열린 남자 50m 권총 시상식에서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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