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영웅' 김재범의 왼손 셋째손가락은 구부러지지 않는다. 인대가 완전히 끊어진 손가락은 S자로 휘었다. 이미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다. 그 손으로 인천아시안게임 2연패를 메쳤다. '펜싱영웅' 남현희의 무릎은 십자인대가 파열된 지 오래다. 무릎에 차오르는 물을 빼가며 피스트에 선다. 그 무릎으로 인천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수영영웅' 박태환의 어깨 연골은 닳을 대로 닳았다. 지난 10년간 날마다 1만m를 헤엄쳐왔다. '70대 노인의 어깨'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어깨로 인천아시안게임 물살을 가르고 있다. '체조영웅' 양학선의 허리는 성할 날이 없다. 추간판탈출증, 척추협착증, 척추분리증, 병명도 줄줄이다. 이번에는 햄스트링 부상까지 추가됐다. 그 허리, 그 다리로 인천아시안게임 남자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영지 하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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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뒤 유도띠조차 제대로 매지 못했다. 탈구된 오른팔은 맥없이 헛돌았다. 왼팔을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기를 썼지만 허사였다. 주심이 예외적으로 도복을 고쳐입지 못한 김은경(동해시청)의 승리를 선언했다.
23일 유도 78㎏ 이상급 4강전, 김은경의 부상 투혼은 눈물겨웠다. 일본의 이나모리 나미에게 허벅다리걸기 한판패를 당했다. 매트위로 떨어지며 오른쪽 어깨가 탈구됐다. 진통제를 맞고 근근이 어깨뼈를 맞췄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모두가 기권을 예상했다. 나지르 사르바쇼바(키르기스스탄)와의 동메달 결정전, 투혼의 김은경이 매트에 다시 섰다. 포기하지 않았다. 겨우 끼워맞춘 어깨는 이미 빠진 채였다. '만년 2진' 꼬리표를 떼고 26세의 나이에 처음 나선 아시안게임,이렇게 물러날 순 없었다. 종료 직전, 남은 한팔로, 혼신의 힘을 다해 안뒤축걸기를 시도했다. 끝내 눈물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은경은 말했다. "이를 악물고 했다. 어깨 때문에라도 더 포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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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남현희' 허 준(26·로러스펜싱클럽)은 22일 중국의 마젠페이와의 남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에서 13대15로 패했다. 세계랭킹 1위를 상대로 박빙의 진검승부를 펼쳤다. 3라운드 직전 고통을 호소하며 피스트에 쓰러졌다. 2주전 다친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이 화근이었다. 가장 절실한 순간, 버텨주질 않았다. 허 준은 1m68의 단신이다. 전광석화같은 움직임과 센스, 저돌적인 파이팅과 집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혹독한 훈련의 결과다. 펜싱에서 신장의 몫은 절대적이다.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남들이 5번 움직일 때 10번, 15번씩 움직여야 했다. 활동량을 뒷받침해줄 체력도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훈련량을 몇 배로 가져갔다. 오른발에 족저근막염, 오른쪽 허벅지 햄스트링, 지독한 혹사의 흔적은 몸 곳곳에 상처로 남았다. 금메달을 놓친 후 허 준은 부상을 탓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주사도 맞고 마사지를 받았다. 큰 변수가 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실력에서 졌다." 개인전 은메달리스트 허 준에겐 아직 단체전이 남았다. 허 준은 말했다. "단체전에선 그냥 피스트에서 죽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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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역도 원정식(24·고양시청)에게 인천은 절실한 꿈이었다. 1년전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선수권에서 인상 144㎏, 용상 180㎏, 합계 324㎏으로 5관왕에 올랐다. 평양하늘에 애국가를 울려퍼지게 한 '차세대 역사'는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놓칠 수 없었다. '베이징올림픽 역도 은메달리스트' 아내 윤진희(28)에게 당당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22일 남자역도 69㎏ 첫 종목 인상, 원정식은 143㎏을 들어올렸다. 강세를 보여온 용상 종목에 승부를 걸었다. 1차시기 170㎏를 성공했다. 2차시기 183㎏,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성공시 동메달을 결정지을 수 있는 무게였다. 전신의 힘을 끌어모아 바벨을 들어올리던 원정식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무릎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3차시기에 나서지 못했다. 양무릎에 테이프를 친친 감은 채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하는 역사의 사진에 외신은 '최선을 다한 당신이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