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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예감했던 銀,'대인배'김연아 '강심장'클린의 감동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4-02-21 09:41


쇼트프로그램 직후 '아, 짜다'라고 혼잣말을 했었다. 17년7개월간 무수히 많은 대회에 출전했다.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언제나 정상에 섰다. 재능뿐 아니라 연습량과 정신력에서 그녀는 늘 세계 최고였다. 김연아는 소치 얼음판의 냉랭한 분위기를 누구보다 먼저 체감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100%의 '클린 연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리고 메달색을 떠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러시아의 홈 텃세는 생갭다도 강력했다. 올림픽 초반부터 김연아의 독주를 막을 강력한 대항마로 지목됐던 16세 율리아 리프니츠카야가 20일 쇼트프로그램에서 점프실수로 넘어지며 자멸했다. 팬들이 안도하는 순간 '복병'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등장했다.

뚜껑을 열면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여제' 김연아를 향한 러시아의 도전은 집요하고 끈질겼다. 소트니코바는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39.09점과 예술점수(PCS) 35.55점으로 74.64점을 기록했다. 기술점수(TES) 39.03점과 예술점수(PCS) 35.89점을 받은 '퀸' 김연아(74.92점)와 불과 0.28점 차 2위에 올랐다. 지난해 캐나다 런던 세계선수권 9위, 지난 유럽선수권 2위였던 소트니코바 스스로도 놀랐다. 예상밖의 고득점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0.28점 차' 박빙 1위, 디펜딩챔피언 김연아는 역시 대인배였다. '아, 짜다'도 비공식 반응이었다. 공식 기자회견에선 판정에 대해 한마디도 논하지 않았다. 자신과의 싸움, 마지막이라는 의미에만 집중했다.

쇼트프로그램 직후 추첨으로 정해진 심판 진명단은 암담했다. 한국 고성희 심판과 미국 심판이 빠진 자리에, 러시아계 심판 2명이 투입됐다. 논란의 인물이었다. 우크라이나 심판은 1998년 나가노올림픽 당시 심판 담합을 시도하는 녹취파일이 공개되며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러시아 심판은 러시아빙상연맹 전 회장, 현 사무총장의 부인이었다.

프리스케이팅 마지막 순서인 김연아 바로 앞에 나선 소트니코바는 엄청난 고득점을 기록했다. 149.95점이었다. 지난 1월 유럽피겨선수권대회에서 세운 퍼스널 베스트 131.63점을 무려 18.32점이나 경신한 점수다. 러시아 홈 관중들이 뜨겁게 열광했다.

150점 이상을 받아야 역전이 가능한 상황, 김연아는 흔들림이 없었다. 불리한 적진에서, 불리한 판정 앞에서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 결과를 예감했지만,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다. 피겨인생의 마지막 프로그램 '아디오스 노니노'에 맞춰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보였다. 단아한 손짓, 깔끔한 점프를 이어갔다. 12가지 과제를 모두 충실히 이행한 '클린'이었다. 점수는 여전히 짰다. 144.19점.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기록한 74.29점과 더해 총점 219.11점을 기록했다. 1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224.59점)에 5.48점 뒤졌다.

김연아는 자신의 점수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한 후 "큰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준비를 하면서 체력, 심리적으로 한계를 느꼈다"며 웃었다. 준비과정에서의 체력적 한계, 소치 현장에서 '디펜딩챔피언'으로서의 심리적 부담감, 홈 텃세에 대한 압박감을 이겨낸 스스로를 "120점"이라는 점수로 위로했다.

김연아는 이날 심판, 점수, 메달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한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고, 피겨 인생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그걸로 족했다. 그녀의 마지막 소감을 이랬다. "끝이 나서 홀가분하다. 쇼트와 프리, 둘 다 큰 실수 없이 마무리했다. 고생한 것을 보답받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게 다 끝나 행복하다."
스포츠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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