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프로그램 직후 '아, 짜다'라고 혼잣말을 했었다. 17년7개월간 무수히 많은 대회에 출전했다.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언제나 정상에 섰다. 재능뿐 아니라 연습량과 정신력에서 그녀는 늘 세계 최고였다. 김연아는 소치 얼음판의 냉랭한 분위기를 누구보다 먼저 체감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100%의 '클린 연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리고 메달색을 떠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쇼트프로그램 직후 추첨으로 정해진 심판 진명단은 암담했다. 한국 고성희 심판과 미국 심판이 빠진 자리에, 러시아계 심판 2명이 투입됐다. 논란의 인물이었다. 우크라이나 심판은 1998년 나가노올림픽 당시 심판 담합을 시도하는 녹취파일이 공개되며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러시아 심판은 러시아빙상연맹 전 회장, 현 사무총장의 부인이었다.
프리스케이팅 마지막 순서인 김연아 바로 앞에 나선 소트니코바는 엄청난 고득점을 기록했다. 149.95점이었다. 지난 1월 유럽피겨선수권대회에서 세운 퍼스널 베스트 131.63점을 무려 18.32점이나 경신한 점수다. 러시아 홈 관중들이 뜨겁게 열광했다.
김연아는 자신의 점수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한 후 "큰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준비를 하면서 체력, 심리적으로 한계를 느꼈다"며 웃었다. 준비과정에서의 체력적 한계, 소치 현장에서 '디펜딩챔피언'으로서의 심리적 부담감, 홈 텃세에 대한 압박감을 이겨낸 스스로를 "120점"이라는 점수로 위로했다.
김연아는 이날 심판, 점수, 메달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한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고, 피겨 인생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그걸로 족했다. 그녀의 마지막 소감을 이랬다. "끝이 나서 홀가분하다. 쇼트와 프리, 둘 다 큰 실수 없이 마무리했다. 고생한 것을 보답받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게 다 끝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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