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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여고생이 처음 밟은 올림픽, 기대는 하늘높은 줄 몰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물론 외신들도 '금메달 0순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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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과 준결선에선 긴장감이 있었다. 하지만 결선에서는 긴장보다 준비한만큼 보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심리적으로는 결선이 더 편안했다는 것이 심석희의 설명이다.
그러나 노련미에 허를 찔렸다. 스타트와 함께 4위를 유지한 그는 10바퀴를 남겨두고 일찌감치 선두로 나섰다. 선두와 2위를 오갔다. 여섯 바퀴부터 다시 1위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저우양(23·중국)의 '영리한 몸싸움'에 역전을 허용했다. 순진하게 레이스를 이끌다 당했다. 메달 색깔도 그대로였다. 저우양은 2분19초140, 심석희는 2분19초239였다.
저우양은 아픈 이름이다. 4년전 밴쿠버 대회 1500m 결선에서 이은별 박승희 조해리 3명이 이름을 올리고도 저우양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여자 쇼트트랙은 16년 만의 '노골드' 수모를 맛봐야 했다. 그런데 또 저우양이었다.
심석희의 최고 강점은 지구력을 갖춘 막판 스퍼트다. 하지만 마지막에 당한 것은 경험 부족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눈물이 고였다. 올림픽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전체적으로는 만족하지만 마지막에 추월 당한 부분은 아쉽다. 저우양은 노련한 선수다." 심석희의 평가다. 미안했다. 그는 "어느 정도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런 것보다 경기에서 금메달을 못 딴 것에 대해서 내 자신에게 아쉬움이 남아있다. 기대하신 분들에게 기대에 못미쳐서 마음이 좀 그렇다"며 수줍게 말했다. 올림픽 벽도 느꼈다. "다른 선수들 자체가 올림픽 때 기량이 더 올라오는 것 같다."
다행인 점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1500m에서 독한 맛을 본 심석희는 1000와 3000m 계주에서 다시 올림픽 정상에 도전한다. 남자 쇼트트랙은 빛을 잃었지만 여자 쇼트트랙은 여전히 살아있다.
심석희의 은메달은 한국 선수단의 세 번째 메달이다. 이상화의 금메달, 박승희의 동메달에 이은 은메달이다. 말 한마디를 꺼내도 얼굴이 붉어진다. 대부분의 질문에 '단답형'일 정도로 수줍음이 많은 여고생이다. 하지만 빙판 위에서는 다르다. 누구보다 지기 싫어한다. 승부욕이 다시 타오르고 있다. "남은 경기에 다시 집중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독을 품었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