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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대학펜싱]피스트에서 공부하는 선수,브라이언 로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8-13 16:16



한미대학펜싱선수권(2013KUEFI)이 개막한 13일, 제주도 서귀포 한국국제학교(KIS) 제주캠퍼스 체육관에선 오전 8시30분부터 남녀 플뢰레, 에페, 사브르 3종목 대진표에 따라 4개의 피스트에서 일사불란하게 경기가 이어졌다. 한국대학펜싱연맹이 주최하고 스포츠조선, (주)로러스엔터프라이즈가 주관하는 이 대회는 한국의 엘리트 선수들과 미국 명문대 학생선수들이 매년 한국에 모여 실력을 겨루고 우정을 나누는 소통의 무대다.



이날 경기를 기다리는 선수석 한켠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열공'하고 있는 한 선수가 눈에 띄었다. 컬럼비아대 펜싱팀의 한국계 에페 선수 브라이언 로(19)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복잡해보이는 화학공식들로 빼곡한 두꺼운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토요일에 화학시험이 있다. 학교에서 이번 대회 때문에 일정을 하루 미뤄줬다. 시험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브라이언에게 여름방학은 부족한 공부를 보충할 절호의 기회다. 화학시험을 앞두고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공부를 했다. 이날도 경기 틈틈이 책을 펼쳐들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펜싱을 한 지는 올해로 6년째다. 이날 아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제주를 찾은 브라이언의 가족들이 관중석에서 든든한 응원을 보냈다. 가톨릭 의대 출신의 아버지 노영균씨(59)는 뉴욕에서 의사로 일한다. 막내아들인 브라이언이 미국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는 등 펜싱에 소질을 보이자 적극 지원에 나섰다. 브라이언은 미국 주니어 랭킹 3위의 활약에 힘입어 컬럼비아대에 진학했다. 아버지 노씨는 "운동을 열심히 하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대학, 대학원, 직장에 취직할 때도 운동 경력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라이언은 모범적인 '학생선수(Student-Athlete)'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학도의 길을 꿈꾸고 있다. 펜싱선수로서의 '스펙'도 훌륭하다. 2011년 미국 청소년대표로 요르단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한국대표팀 선수들과 맞대결을 펼쳤다. 컬럼비아대 입학 후 처음 참가한 동부지역대회에서 1위, 전미대학펜싱대회에서 6위에 오른 에이스다. 주말을 뺀 주중 매일 수업 후 2시간씩 펜싱을 한다. 철저하게 자기 시간을 통제하고 완벽하게 관리한다.

공부와 펜싱, 2개를 함께하는 것이 더 힘들고 피곤하지 않느냐는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부만 했다면, 혹은 펜싱만 했다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펜싱하다 지겨우면 공부를 하고, 공부하다 지겨우면 펜싱을 한다. 내 삶의 밸런스, 균형을 유지해주는 2개의 축"이라고 설명했다. 운동도 공부도 삶의 '균형(balance)'을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펜싱은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운동이다. 상대의 플레이를 예측해야 하고, 생각도 많이 해야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도, 체력을 기르는 데도, 공부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국내외 어떤 대회에서도 시험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본 적이 없다. 현장에서 직접 본 '열공'하는 '학생선수'는 신기하고 신선했다.
제주도=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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