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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 레슬링이다."
바뀐 규정에 재미도 'UP'
요즘 레슬링계의 모든 관심은 올림픽 종목 채택에 쏠려 있다. 지난 2월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에서 레슬링이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탈락한 뒤 벌어진 현상이다. 국제레슬링연맹(FILA)는 지난 3개월간 개혁을 위해 칼을 꺼내 들었다. 무능과 부패로 비난받았던 라파엘 마르티네티 국제레슬링연맹(FILA) 회장이 사퇴했고 여성부회장 자리를 신설하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재미있는 경기'를 위한 룰 개정에도 앞장섰다. 2005년에 도입한 2분 3회전의 세트제를 폐지하고 3분 2회전 경기로 9년 만에 복귀했다. 2회전(6분)동안 더 많은 포인트를 따낸 선수가 승리를 할 수 있어 1,2회전 내내 공격적으로 경기 운영할 수 밖에 없다. 또 자유형의 경우 소극적인 경기로 경고를 받은 선수가 30초 동안 점수를 내지 못하면 상대 선수에게 1점을 빼앗기고 크레코로만형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상대 선수가 파테르 혹은 스탠딩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까지 주어진다. 패시브 제도 수정과 함께 공격적인 레슬링을 유도할 수 있는 룰 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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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한국 레슬링에 희망이 번지고 있다. 바뀐 규정이 한국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현우는 "러시아나 유럽 선수들은 파워에서 앞서지만 지구력이 약한 편이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훈련량이 워낙 많아 체력에서 월등히 앞설 수 있다"고 했다. 3분 2회전으로 경기 규정이 바뀐 만큼 경기 후반부에 승부를 걸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레코로만형 55㎏급 국가대표로 선발된 최규진 역시 "외국 선수들은 기술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지만 한국 선수들은 체계적으로 짜인 훈련을 통해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쌓는다"고 분석했다. 대표팀을 이끄는 안 감독은 새 규정에 맞는 새로운 훈련법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기존 방식을 싹 버리고 다른 종목의 훈련 방식을 벤치마킹해 체력 훈련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기존에는 전력 질주를 4분간 했다. 하지만 체력을 더 기르기 위해 달리기 이후 3분간 사다리와 허들, 타이어를 이용하는 추가 훈련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6분간 전력으로 경기를 치르기 위해 최소 7분 이상 극한의 훈련을 소화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이어 안 감독은 "이번주에 대표팀 선수들을 소집해 훈련에 들어간다. 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꼭 금메달을 걸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하필이면 이 중요한 시기에…
벼랑 끝에 몰렸던 레슬링은 지난달 30일 기사회생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끝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에서 2020년 하계올림픽 정식 종목에 포함될 후보 종목으로 야구·소프트볼, 스쿼시를 함께 선정됐다. 이제 레슬링은 9월에 있을 IOC 총회에서 최종 후보로 채택되기 위한 마지막 도전만을 남겨두게 됐다. 종목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시기다. 모든 레슬링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그러나 이날 열린 선발전에 '화합'은 없었다. 그레코로만형 경기가 진행되던 중 한 선수의 소속팀 감독이 매트에 난입했다. "경기 안해. 선수들 다 나와." 고성이 울려퍼졌다. 판정에 대한 불만이었다. 경기는 중단됐다. 다행히 해당 선수가 경기 재개 의사를 밝혀 경기는 정상적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경기를 마친 뒤 이 감독이 대한레슬링협회 관계자들과 다시 실랑이를 벌이는 볼썽사나운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 감독은 "내가 협회와 관계가 안 좋다고 계속 불리한 판정을 내리고 있다. 경기 전에 판정을 제대로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번 경기에서도 상대 선수에게 패시브를 줘야 하는데 반대로 우리 소속 선수에게 계속 패시브를 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 관계자는 "경기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라며 사태를 수습했다. 화합을 논해야 할 시기에 숨기고 싶던 '힘 겨루기'가 겉으로 드러난 레슬링계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레슬링 관계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 나오다니…"라며 자조 섞인 한 숨이 나왔다.
아직 새 규정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시행착오도 많이 발생했다. 팀 관계자들이 심판위원을 붙잡고 규칙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고, 경기 도중 심판위원 사이에 규칙 적용을 놓고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미'는 살렸지만 아직 새 규정에 '적응'해야 하는 숙제를 남긴 대표 선발전이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