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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전설' 김연아 클래스가 달랐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3-03-17 17:56 | 최종수정 2013-03-18 09:30



클래스가 달랐다.

아사다 마오(일본)는 동갑내기일뿐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니었다. 세계선수권대회 디펜딩챔피언이자 유럽의 최강 카롤리나 코스트너(26·이탈리아)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갈대처럼 흔들린 심판들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피겨여왕의 귀환'은 화려했다. 전세계에 감동을 선물했다. 또 다른 전설의 시작이었다. 김연아(24)는 지존이었다. "나도 인간이다. 잘 하고 싶고, 이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7분 드라마는 소름돋혔고, 해피엔딩이었다.

김연아가 17일(한국시각)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의 버드와이저 가든스에서 열린 2013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등극했다. 여자 싱글에서 총점 218.31점(쇼트프로그램 69.97점, 프리스케이팅 148.34점)으로 정상에 올랐다.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1위를 했지만 심판들의 잣대가 가혹했다. 프리스케이팅은 무결점이었다. 심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위 코스트너(197.89점), 3위 아사다(196.47)와는 품격이 달랐다.

올시즌 여자 싱글 최고점이다. 지난달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 마오가 기록한 205.45점과는 비교가 안됐다.

2막은 특별했다. 일곱 살때 피겨와 만난 김연아의 꿈은 단 하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점프의 정석'이 되기까지 1800㎡의 차가운 빙판에서 수만번 뒹굴었다. 춥고, 배고팠다. 스케이트 부츠 문제로 은퇴까지 생각했다. 부상도 숙명이었다. 고질인 허리 통증에다 발목, 무릎도 좋지 않았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변함이 없었던 것은 일과표였다. 훈련 스케줄로 빼곡했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훈련 뿐이었다.

악전고투 속에 13년 만에 그녀는 최고가 됐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최정상에 섰다. 피겨 불모지에서 이룬 올림픽 기적에 세계 피겨사는 새롭게 쓰여졌다. 스무살에 이룬 전설이었다. '사연많은 감격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린 것은 갈림길이었다. 꿈을 달성한 후 허탈감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은퇴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한달 후 이탈리아 토리노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면서 정신적인 후유증을 겪었다. 2010~2011시즌 러시아 모스크바세계선수권대회 출전으로 피겨와 인연의 끈을 이어갔지만 현역과 은퇴의 사선에서 방황은 계속됐다. 두 대회 연속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려웠다. 다시 선수로 돌아가 혹독한 훈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 '강심장'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빙판에 설 때 늘 긴장했다.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온 국민의 관심과 애정은 더 큰 부담이었다. 후퇴를 결정했다. 2011~2012시즌을 건너 뛰었다. 그랑프리 시리즈는 물론 세계선수권대회에도 불참했다. 김연아가 자리를 비운 세계 피겨계도 덩달아 침체기를 겪었다. 경쟁 선수들도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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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2012~2013시즌 은퇴든, 현역 연장이든 진로를 결정할 시기가 왔다. 지난해 7월 2일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연아입니다."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8개월이 흘렀다. 김연아는 김연아였다. 전세계 시선을 또 사로잡았다. '여왕의 대관식'은 달콤했다. 김연아는 명불허전이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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