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F1 드라이버 양성, 그 첫 발을 떼다!

◇지난 7일 일본 후지스피드웨이에서 '슈퍼 포뮬러'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여기에 나선 김동은, 최해민, 정의철이 함께 모여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왼쪽부터). 사진제공=인제오토피아

◇'슈퍼 포뮬러'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선 최해민이 후지스피드웨이 서킷 위를 질주하고 있다. 사진제공=인제오토피아

◇F3 머신을 몰고 피트에서 출발하고 있는 정의철. 사진제공=인제오토피아

◇김동은이 긴장된 표정으로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인제오토피아

'한국인 F1 드라이버 양성, 그 첫 발을 떼다!'

설날 연휴를 목전에 둔 지난 7일, 일본 시즈오카현 고텐바시에 위치한 자동차 경주장 후지스피드웨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넘쳐 났다.

후지스피드웨이는 스즈카서킷과 더불어 일본에서 F1(포뮬러 원)이 열리는 양대 경주장 중 하나다. 물론 이날 F1이 개최된 것은 아니다. 아직 자동차 레이스 시즌이 시작되지 않았기에 관중석은 텅 비어 있었다. 후지산이 손 앞에 닿을 정도로 맑았지만, 거센 바람으로 인해 체감온도는 영하의 날씨였다.

하지만 경주차들이 출발하는 피트(pit)와 서킷 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F1을 비롯해 슈퍼 포뮬러, 슈퍼GT, 슈퍼 다이큐 등 세계적인 수준의 자동차 경주가 연중 펼쳐지며 수많은 드라이버들의 명경기가 펼쳐지는 50년 역사의 후지스피드웨이지만, 적어도 이날의 주인공은 한국인 드라이버들이었다.

국내의 각종 대회를 휩쓸고 해외 무대 경험도 있는 최해민(29) 정의철(27) 김동은(21) 등 3명의 드라이버는 '슈퍼 포뮬러'(Super Formula)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발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슈퍼 포뮬러는 일본 JRP(재팬레이싱프로모션)가 개최하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포뮬러 대회로, 지난해까지 '포뮬러 닛폰'으로 불리다 올 시즌을 앞두고 아시아권 진출을 위해 이름을 바꿨다. F1의 바로 밑 단계인 GP2 수준의 대회로, 배기량 3400㏄급의 V8 엔진을 탑재, 최대 출력 600마력에 최고 시속은 300㎞에 육박한다. 오는 8월25일 강원 인제군에 위치한 인제오토테마파크에서 역사적인 한국 대회를 펼치게 된다. 이날 선발전은 인제오토테마파크의 운영주체인 인제오토피아가 슈퍼 포뮬러 한국 대회에 나설 국가대표를 선발, 육성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첫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3명의 드라이버가 아직까지 600마력의 슈퍼 포뮬러 머신을 타는 것은 무리였다. 따라서 이날은 F3(2000㏄, 250마력) 머신으로 '포뮬러 드라이버 선발 오디션'을 치렀다.

첫 주자로 나선 최해민은 지난해까지 미국 인디카의 하위레이스에서 뛰며 3명 가운데 포뮬러 경험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후지스피드웨이는 첫 도전. 긴장감에다 의욕이 너무 앞섰는지 랩타임(한 바퀴를 도는 기록)을 1분42초68까지 끌어올렸지만, 레이스 도중 브레이킹 미스로 10바퀴째에서 코스를 이탈하며 주행을 멈춰야 했다.

두번째로 나선 정의철은 30분 내내 완주를 기록했지만, 최고 기록은 1분43초10에 그쳤다. 후지스피드웨이 경험은 있지만 포뮬러 머신을 5년 넘게 타지 않았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 주자인 김동은은 3명 가운데 가장 어린데다, 일본에서 2년간 포뮬러 레이싱 스쿨을 경험하며 후지스피드웨이에서 경주를 뛰기도 했다. 출발을 할 때 2번 정도 시동이 꺼질 정도로 긴장한 티가 역력했지만, 이내 페이스를 되찾고 30분을 완주하며 1분40초46으로 가장 좋은 기록을 올렸다. 익숙한 코스였기에 특히 코너링에서 다른 드라이버들보다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이날 경기를 감독했으며 지난 95년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던 세계적 드라이버인 FTRS(포뮬러 도요타 레이싱스쿨)의 세키야 마사노리 교장은 "일본 F3 정상급 선수들도 1분40초대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3명의 드라이버가 무척 잘 탔다"며 "역시 관건은 600마력의 머신을 90분 내내 제어할 수 있는 체력이다. 이를 보완한다면 3명 모두 더 뛰어난 드라이버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JRP의 시라이 히로시 대표는 "한국 드라이버들의 숨은 실력에 놀랐다"며 "한국 대회 개최를 통해 일본 모터스포츠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한국인 포뮬러 드라이버가 나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슈퍼 포뮬러는 일본 모터스포츠 피라미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며 "한국도 이 피라미드를 완성시켜 양국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모터스포츠 강국이 되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제오토피아 김도형 본부장은 "테크니컬 평가 70%, 기타 요소 30%를 반영해 드라이버 1명을 뽑겠다"며 "선발된 선수는 F3급의 포뮬러 머신으로 계속 훈련을 시킨 후, 여름에는 JRP로부터 슈퍼 포뮬러 머신을 들여와 두 달간 특별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탈락한 나머지 2명도 다음달부터 진행되는 인제오토피아의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내년 시즌 슈퍼 포뮬러 드라이버로 선발된다.

김 본부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세계적 수준의 한국인 레이서를 발굴, 육성하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며 "첫 대회 결과에 따라 2명의 한국 드라이버가 내년에 슈퍼 포뮬러 전 경기에 참가하는 풀 시즌팀을 구성해 참여할 계획이다. 이를 비롯해 슈퍼 다이큐, 아시아 르망 레이스 등 국제 대회를 개최하면서 다양한 급의 레이서를 육성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고텐바(일본)=남정석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