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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대구스타디움 국기 게양대에 처음으로 태극기가 올라갔다. 남자 휠체어 T53 400m 출전한 한국의 유병훈(39)이 50초69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록 메달 공식집계에는 포함되지 않는 번외경기였지만 달구벌을 가득 메운 3만5000명의 홈팬들을 열광케 하기에는 충분했다. 마지막 350m 구간까지 4위를 기록했지만 극적인 막판 스퍼트로 2위까지 올라섰다. 3위도 한국의 정동호가 차지했다.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유병훈은 이를 꽉 물었다. 지난 2월 왼쪽 어깨 수술을 해 6개월 재활치료를 해야했지만 5월부터 다시 휠체어에 올랐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이고 이번 대회에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내면 장애인 휠체어 경기가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욕심을 내서 성적을 내고 싶었다. 이번 일로 인해 장애인 휠체어 종목의 후배들이 운동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생길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재활기간을 앞당겼다."
4세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1급인 유병훈은 중학생 시절 휠체어 농구로 운동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 장애인 농구 대표선수로도 활약한 그는 휠체어 마라톤 동영상을 접한 이후 마라톤 매력에 빠져 1994년 종목을 전향했다. 하지만 2002년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패럴림픽에 출전하고 싶은 욕심에 경쟁이 덜 치열한 트랙 종목을 택했다. 2006년 아시아태평양장애인 경기대회 8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정상권으로 진입했다. 2007년 월드챔피언십 4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광저우아시안패러게임 200m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농구를 시작으로 육상, 최근에는 동계종목인 휠체어 크로스컨트리 선수로도 활약하는 등 끝없는 도전이 그의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운동환경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정부의 지원금이 부족하고 1000만원에 이르는 휠체어도 직접 구입해야 한다. 어쩔수 없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운동을 병행한다. 휠체어 제조회사에서 영업팀장으로 일하다보니 1주일에 2~3회 훈련하는게 전부다. 유병훈은 40~50명 밖에 안되는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장애인육상 실업팀이 꼭 생겨야 한다. 운동에만 전념하게 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종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장애인 휠체어 육상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나이가 있는 만큼 미래를 준비할 시점이라고 했다. 마지막이기에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그는 "스타트만 보완한다면 세계랭킹 1위 콜먼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난 5월부터 지인의 소개로 만난 일반인 여자친구를 위해서다. "런던올림픽 시상대에 꼭 올라가고 싶다. 메달을 따게 된다면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유병훈은 다시 경기도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 입소해 대표팀 훈련에 집중할 예정이다.
대구=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