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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육상]제자리 걸음 한국 마라톤, 도로에서 길잃다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1-09-04 13:42 | 최종수정 2011-09-04 13:42


'포스트 이봉주'로 불린 지영준이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할 때만 해도 기대를 걸어볼만했다. 당시 한국 마라톤은 죽지 않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잘 될 것만 같았다. 특히 안방에서 벌어지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그랬다.

4일 약 9개월 만에 뚜껑을 열어보고 무척 실망했다. 한국 마라톤은 세계 수준과 여전히 큰 격차를 보였다. 개인 메달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은근히 기대를 했던 단체전(같은 나라에서 출전한 상위 성적 3명의 기록을 합해 국가별 성적을 매김)에서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 정만화 대표팀 코치는 "준비가 부족했다. 대구의 무더위를 예상하고 준비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서 "가장 기대를 했던 정진혁은 2시간 9분대 이하로 뛸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대구 시내 날씨는 섭씨 24~26도, 습도 57~65%로 달리기에 쾌적했다.

대회 2연패를 한 케냐의 아벨 키루이(2시간7분38초)와 태극전사 중 가장 빨랐던 정진혁(23위·2시간17분4초)의 격차는 무려 9분26초. 정진혁의 평균 스피드를 거리로 환산할 경우 키루이가 피니시라인(42.195km)를 지날 때 정진혁은 39.291km 지점을 달렸다고 볼 수 있다. 두 선수를 거리 개념으로 따졌을 경우 2.904km 차이가 나는 셈이다. 엄청난 차이다. 28위 이명승(2시간18분5초), 35위 황준현(2시간21분54초), 40위 황준석(2시간23분47초), 44위 김 민(2시간27분20초)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단체전에선 1위 케냐는 물론이고 일본(2위) 중국(5위)에도 뒤졌다.

한국 마라톤은 2009년 이봉주 선수 은퇴 이후 구심점을 잃어 버렸다. 지영준이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면서 제 역할을 해주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올해 허벅지 뒷근육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번 대회에 불참했다. 또 준비 과정에선 무혐의 결정된 금지약물 투여 수사 파동에 휘말리는 일도 있었다.

한국 마라톤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가 금메달을 따면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이봉주가 96년 애틀랜타에서 은메달, 2001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으로 건재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봉주가 2000년 세운 2시간7분20초의 한국기록은 11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이미 세계기록(2시간3분59초·2008년)과의 격차가 3분 이상 벌어진 지 3년이 됐다. 지금은 이봉주도 유니폼을 벗었다. 또 이봉주와 라이벌 관계였던 황영조도 없다. 요즘은 황영조와 이봉주 같은 라이벌도 없다.

한국 마라톤이 위기라는 목소리는 2000년대 중반부터 나왔다. 일단 훈련량이 많아야 하는 마라톤을 하겠다는 선수 자원이 별로 없다. 전국체전 일반부 마라톤에 출전하는 선수가 50명이 안 된다. 가장 큰 문제다. 좋은 자원이 있어야 지도자도 키울 맛이 난다. 또 고 정봉수 감독 같은 훌륭한 지도자도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영준은 고인이 발굴한 마지막 선수다. 이후에 한국 마라톤의 계보를 이을 만한 선수는 아직 없다.

런던올림픽이 채 1년이 남지 않았다. 한국 마라톤은 이런 상태라면 내년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영준이 부상에서 회복해 조만간 훈련을 재개한다지만 케냐의 검은 철각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올림픽이나 세계육상에서 다시 메달을 딸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마디로 답이 없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조만간 중장기 발전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내놓았던 대책의 재탕 또는 삼탕이 될 게 뻔하다. 대구=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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