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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마라토너 이봉주(41)가 선수 은퇴한 후 약 2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8월27일~9월4일)가 코앞으로 다가온 한국 마라톤은 아직 확실한 '포스트 이봉주'를 찾지 못했다. 이봉주의 후계자로 여겨졌던 지영준(코오롱)은 다리 부상으로 이번 대회를 포기했다. 한국 마라톤은 신예 정진혁(21·건국대) 등에게 기대를 걸어야 하는 안타까운 처지가 됐다.
외도의 절정은 한 방송사의 춤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다. 모든 국민으로부터 영웅으로 불리는 이봉주가 텔레비전에 나가 사교 댄스를 추는 걸 보고 일부 육상인들은 비웃었다. "돈에 환장했다"는 비난도 있었다.
이봉주는 "돈 보고 출연한 것은 아니다. 나를 아끼는 팬들에게 잠깐이라도 색다른 변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이봉주를 춤추게 만들려고 수 개월 동안 따라다녔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이봉주는 성공한 마라토너의 이미지가 망가지는 걸 원치 않아 여러 차례 거절했다. 제작진은 2~3개월 동안 이봉주를 설득했다. 이봉주는 "미국의 풋볼 스타 하인스 워드도 텔레비전에서 춤을 췄다는 얘기를 듣고 출연을 결정했다"면서 "워드도 했는데 나라고 못하라는 법은 없었다"고 했다.
이봉주가 은퇴 결심을 했을 즈음 소속팀 삼성전자는 코치직을 제안했었다. 오인환 삼성전자 마라톤 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배려했다. 이봉주는 쉴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는 이제 충분히 쉬었다.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는 "선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지도자를 하려고 한다.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쯤이 될 것 같다"면서 "친정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이봉주 역시 세계육상선수권과는 큰 인연이 없었다. 1995년 스웨덴 예테보리대회(22위), 2001년 캐나다 에드먼턴대회(중도 기권), 2003년 프랑스 파리대회(11위)에 출전했지만 메달을 따지 못했다. 가장 아쉬웠던 건 2001년 에드먼턴대회였다. 당시 보스턴마라톤 우승으로 강력한 우승 후보로까지 꼽혔지만 대회 직전 다친 허벅지 부상으로 31km 지점에서 레이스를 포기했다. 한국 마라톤의 세계육상선수권 최고 성적은 1993년대회에서 김재룡이 기록한 4위다.
이봉주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후배들에게 "마라톤은 자기 의지와의 싸움이다. 한번 하려고 마음 먹었으면 제대로 해야 한다"면서 "목표를 잡고 끝가지 열심히 달리는 선수가 나와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강압적인 지도자 보다 고민상담을 잘 받아주는 친구같은 코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구=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