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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아버지는 Shim, 아들은 Sim. 무슨 사연일까.
심정수는 1994년 OB 베어스에 입단하며 주목을 받은 강타자. OB와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를 거치며 15시즌 동안 무려 328개의 홈런을 쳤다. 정타로 맞았다 하면, 넘어간다 할 정도로 힘이 좋아 별명이 '헤라클래스' '소년장사' 였다. 2007년 31개의 홈런을 치며 홈런왕 타이틀을 획득했고, 2003년에는 무려 53홈런 시즌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삼성의 '국민거포' 이승엽이 56홈런을 치며 홈런왕 자리는 내줬지만, 두 사람의 타이틀 경쟁은 아직도 KBO 리그 최고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심정수는 은퇴 후 지도자 일을 하지 않고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거 3명의 아들을 모두 야구계에 입문시켰다. 가장 큰 형인 제이크 심은 KBO리그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 더 큰 꿈을 이뤄냈다.
심정수는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케빈은 미국에 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교에서도 성적이 좋았다"고 말하며 "나는 이런 환경이 매우 좋았다. 선수 이전에 사람으로서, 필드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야구 선수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생활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해프닝도 있었다. 케빈 심의 영문 성은 'SIM'이다. 심정수는 'SHIM'을 사용한다. 보통 한국인들은 후자를 쓴다. 심정수는 이주 과정에서 여권 신청서를 작성할 때 실수로 아들들의 성을 'SIM'으로 적었다고 한다. 뒤늦게 실수를 알았지만, 다시 이름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골프 여제' 박세리도 처음 미국에 건너갈 때 부친이 'PARK'를 'PAK'으로 잘못 표기해 'PAK'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심정수는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였었다. 우리 가족은, 특히 아이들은 문화적 차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랬는데 아들이 체이스필드에서 배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정말 특별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미국 생활을 오래했지만, 케빈 심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한국 야구에 대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메이저리그의 장벽을 깨고 싶어하는 모든 한국인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고 했다. 케빈 심은 "한국 야구는 작지만 거대하다"고 말하며 "KBO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경쟁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고 밝혔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