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는 기억과 망각이 '양팔 저울'처럼 균형점을 맞춰 작동한다. 이 균형이 깨지는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억과 망각의 불균형은 '망각이 과도하게 우세한 경우'다.
경도인지장애와 치매 등이 이런 경우에 속하는 '병적 기억저하'다.
건망증과는 무엇이 다를까?
건망증(健忘症)이라는 한자에서 답을 찾을 수가 있다. '건강할 건(健)'자에 '잊을 망(忘)'의 조합은 삶에 있어서 순기능이 있음을 시사한다. 즉, 적당히 잊고 사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신경과 김지은 교수는 "마치 뇌 질환이 있을 때 건망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건망증은 병적 인지 저하로 보지 않는다"며 "뇌가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 못하거나 저장된 정보를 꺼낼 여력이 없는 상태. 쉽게 말해 수면시간 저하, 심적 스트레스, 과로, 복잡한 마음이나 우울감에 시달려 뇌가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때 건망증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뇌가 과도한 수준의 외부자극에 매몰되어 버린 경우에도 건망증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상황에서 마치 두꺼비집을 내려 전력을 차단하듯 뇌가 지쳐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젊은 데 건망증이 심해졌다고 느낄 때, 본인의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맞는지, 전자기기와 같은 디지털 매체를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접하는 것은 아닌지,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건망증과 구분되어야 하는 병적 인지 저하 단계는 경도인지장애이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문제 없어 증상을 수년 이상 관찰하다가 병원을 찾는 환자가 흔하다.
김지은 교수는 "정상인이 연간 치매로 진행할 확률이 1~2%에 그치는 반면,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5~10% 정도로 치매 진행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
따라서 인지 저하가 건망증 수준인지, 경도인지장애 단계인지를 조기에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도인지장애는 특정 질환의 명칭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염, 맹장염처럼 개별적 질환의 이름이 아닌 '인지저하의 단계, 또는 상태'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즉, 아직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지만 같은 나이, 학력을 가진 동년배의 평균치와 비교했을 때, 객관적인 인지기능 검사상에서 유의한 저하가 관찰되는 상태를 경도인지장애라고 부른다.
치매 역시도 특정 질환의 명칭이 아니다. 인지 저하로 인해 독립적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다.
치매라는 상태를 유발할 수 있는 질환이 수십 가지에 이르듯, 경도인지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질환 역시 수십 가지다.
그중 치매 원인 질환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은 초기 인지기능검사에서 '기억상실형 경도인지장애' 패턴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경도인지장애의 종류를 면밀히 구분하는 것은 향후의 진행 경과를 예측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그런데 뇌는 다른 장기에 비해 조직검사를 시행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생체기관이다.
퇴행성 뇌 질환으로 인지 저하가 오면 긴 시간 동안 서서히 모습이 바뀌어가므로, 첫 진료만으로 확정 진단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김지은 교수는 "자기공명영상(MRI), 전자방출 단층촬영(PET-CT) 등과 같은 다양한 영상검사와 정확한 병력청취, 꾸준한 임상경과의 파악, 정밀신경심리검사 패턴의 분석이 병행될 때, 병적인지저하의 길목에서 올바른 이정표를 찾아나갈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무증상인 경우에도 '미래의 치매 예방'을 위해 뇌 영양제, 뇌기능개선제를 미리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도인지장애나 치매의 가장 큰 위험인자는 연령이라서 특정 약제의 복용으로 완전히 이를 막는다는 것은 어렵다.
김지은 교수는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취미생활과 꾸준한 사회활동 유지가 뇌의 퇴행 과정을 늦추는 것은 틀림없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기억과 망각의 불균형 길목에 있다고 생각된다면, 가능한 조기에 의료진과의 면담을 통해 적절한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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