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도약 (2)

기사입력 2000년 04월 13일 13시 43분


"이거 어떻게된 일이야?"

이대진의 자리로 다가온 조재철이 앞쪽에 앉은 오성호와 차만석도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인사가 취소됐어. 이거 뭐 이따위 회사가 있나 그래?"

"글쎄 말입니다."

시치미를 뗀 얼굴로 이대진이 말했고 오성호와 차만석은 동시에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들을 흘겨본 조재철이 바짝 다가섰다.

"너, 무슨 수작을 부렸어?"

"알고 계시잖습니까? 난 어젯밤 중국에서 돌아와서는 가만 있었습니다."

"넌 징그런 놈이야."

"거, 말씀 좀 정화시킵시다."

"그건 그렇고 그 웅담, 진짜야?"

"시험 해보시지요."

조재철도 한걱정 덜었다는 표정으로 돌아가자 오성호와 차만석이 의자를 당겨 붙어 앉았다.

"국정원의 말발이 먹혔군요?"

오성호가 묻자 이대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 방법이 최선이었어."

"하긴 사실 아닙니까? 당연히 그쪽에서 거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차만석이 거들었다. 이대진이 오성호를 바라보았다.

"사생활을 건드리는 건 나도 내키지 않았어요. 그건 최악의 수단이었다."

오성호는 그동안 용역회사를 시켜 백경일과 그의 정부 문영애에 대한 자료를 가득 준비해 놓았던 것이다. 그것을 백주현은 물론이고 백경일의 부인한테도 터뜨려 몰락 시킨다는 계획이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대진의 연락을 받고 보류되었다.

오성호가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보스, 그럼 오늘 저녁에는 간만에 단합대회를 하십시다. 보스의 무사귀환에다 원대복귀를 위해서."

그런데 그날 저녁에 이대진은 백경일과 둘이서 회사 근처의 일식집 방안에서 마주앉게 되었다. 백경일이 퇴근 무렵에 이대진을 불러냈기 때문이다.

생선회 안주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 정종 잔만 비우던 백경일이 다시 이대진의 잔을 채워주면서 문득 물었다.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 지 말해줄 수 있나?"

"예. 실장님."

선뜻 대답한 이대진이 정색했다. 그는 외교부의 안동성 과장을 만났을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요약을 했음에도 끝났을 때는 술 주전자 하나가 다 비워졌다.

입안이 마른 이대진이 술잔을 들었을 때 백경일이 정색하고 바라보았다.

"자넨 별종이야."

"그런 소리도 가끔 듣습니다."

백경일이 술기운으로 붉게 상기된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 돈은 다 어디서 났나?"

"그저 모은 돈입니다. 실장님."

"리베이트 먹은 돈이지?"

그리고는 다시 웃었으므로 이대진도 쓴웃음을 지었다. 백경일이 이대진에게 불쑥 술잔을 내밀었다.

"야, 너 앞으로 나한테 형님이라고 해라. 물론 사석에서 말이다."

놀란 이대진이 눈만 크게 뜨자 백경일이 잔에 술을 채웠다.

"어때? 할테냐?"

"하지요. 형님."

"동생 삼았다고 리베이트 불라고 하지는 않을테니까 걱정말어."

"행동에 조심하겠습니다. 형님."

"내가 진작에 이랬어야 했는데."

술잔을 든 백경일이 붉어진 눈으로 이대진을 보았다.

"오늘 아침에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나서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단 말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까 체증이 뚫린 것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