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진 '브로드웨이 대작 아이다 보고'
기사입력 2000년 04월 02일 15시 44분
지난주 뉴욕 출장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신작 뮤지컬 몇편을 보았는데 콘택트(Contact)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두드러지는 작품은 없었다.
다만 지난 3월25일 개막한 대형 신작 뮤지컬 `아이다'가 세간의 관심을 모았는데 규모면에서는 아마 최근 작품중 가장 대작일 것이다. `아이다'는 이름에서 알수있듯 오페라 `아이다'를 개작한 작품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뮤지컬이 소재 난을 겪고있기 때문에 기존의 콘텐츠를 변형하는 작업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리바이벌이나 혹은 소재 및 줄거리 도입 등을 통한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번안한 작품이고, 최근 뮤지컬 `렌트'도 오페라 `라보엠'을 변형한 작품이다.
하지만 `렌트'에서 오페라에 사용되었던 음악적 요소들은 찾을 수 없다. 음악자체가 우선 빠른 비트의 록이고 동성연애와 에이즈를 다루는 등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렌트'가 `라보엠'을 개작한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다' 역시 오페라적 요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개선 행진곡조차 뮤지컬 `아이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줄거리가 동일할 뿐이다.
이 작품은 `아이다'라는 명성도 있었지만, 세계 뮤지컬계의 거장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대부분 영국 스태프가 많은데, 가수 엘튼 존이 음악을 맡았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작곡한 팀 라이스가 가세했다. 대본은 `M.버터플라이'라는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중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황. 이 세명의 모인 사실만으로도 뉴욕 예술인들의 화젯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너무 기대를 한 탓일까? 생각보다 음악이 썩 훌륭하지는 못했던 듯 싶다. 오페라에서 느끼는 아이다의 슬픈 사랑이 가슴에 절절히 와 닿을 만큼 귀에 익는 훌륭한 곡은 없었다. 엘튼 존의 노래가 전체적인 뮤지컬 음악적 구조에 제대로 녹아있지 않은 듯 느껴졌다. 미국 언론에서도 대부분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괄목할만한 부분도 물론 있었다. 특히 승전을 기념하는 축하연 장면에서 펼쳐지는 패션쇼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한 예술가가 작품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얻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나름대로 뮤지컬의 귀재들이라는 사람들이 만든 작품임에도 관객들의 코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기까지는 여러가지 최상의 조건들과 운까지도 따라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하기에 뮤지컬은 제작자나 관객 모두에게 매력적인듯 싶다. 작품의 수준을 떠나서 우린 극장안에 들어서면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정신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다.
[연극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