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日부모들의 `노땡큐'선언 파라사이트족
기사입력 2000년 03월 27일 14시 27분
한국특파원을 지내고 지금은 정년퇴직하여 지방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K씨. 바로 얼마 전에는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밀사로 대북경제의 물꼬를 트는데 일정부분을 담당했다는 고백록을 국내잡지에 발표했던 그와는 84년부터 서로 허물없이 터놓고 지내는 관계다.
그래서 언젠가 식사를 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K씨의 자녀들에 대한 혼사를 물어봤다. 이제는 청첩장을 돌릴 때도 됐는데 영 소식이 없어 늘 궁금하던 참이었다. 그를 아는 이들 대부분이 그랬다. 그래서 내가 물어 본 것이다. 그런데 K씨의 반응이 이상하게도 뜨악했다.
"딸애야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니까 문제가 없지만 우리 아들이 문제야. 영국유학도 다녀왔고 직장도 튼튼한데 글쎄 결혼할 생각도 않고 또 집에서 나갈 생각도 안해요. 그렇다고 내@을 수도 없고…."
K씨가 도쿄에 올라올 때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나는 꼭 그의 아들 소식을 물어봤다. 아직도 집에 같이 사는지 궁금해서였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여태까지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사는 아들이 미워죽겠단다.
그러면 나는 짐짓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하곤 했다.
"좋잖아요, 한국은 오히려 결혼한 자식들이 분가한다고 하면 부모들이 섭섭해 하는데. 같이 살면 외롭지도 않고 말이에요"
"한국은 나중에 자식들이 부모를 부양하잖아. 하지만 일본에선 자식들이 순전히 저 편할려고만 같이 있는 거라구. 그래서 내 아내는 아들녀석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이야."
K씨의 아들에 대한 불만은 결국 그 아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분가하기 전까지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그런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5년전 내가 유학생활을 할 때 집주인이었던 나가시마 할머니는 10여가구가 사는 아파트 두 동을 가지고 세를 놓아 그 임대표수입으로 사는데, 그 중 한 집에서 할머니의 둘째 아들이 살고 있었다. 물론 집세는 공짜가 아니다. 바로 얼마전에도 그 아파트에 가보았는데 여전히 둘째 아들은 어머니에게 고박꼬박 집세를 내며 살고 있었다.
요즘 일본에는 `파라사이트(parasite)족'이라는 말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말이 유행한 데는 엉뚱한 사연이 있긴 하다. 인도네시아인의 제 3부인이었던 데뷔라는 한 무식한 일본여성이 자신이 이렇게 불리자 발끈한 것이다. `파라사이트'라는 말을 `기생(寄生)' 아닌 `기생충'으로 잘못 해석한 것. 자신에게 이 말을 사용한 프로듀서에게 별의별 악담을 퍼부으며 난리를 펴 전국적인 유행어가 되긴 했지만 이 말은 일본 가정 풍속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파라사이트'는 말 그대로 기생하는 것. 현재 일본가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앞의 K씨처럼 자식이 장성하여 한 몫을 하고 있는데도 부모로부터 독립할 생각을 전혀 갖지 않고 있는 경우다. 그래서 일본언론들은 이같은 젊은이들을 가리켜 일명 `파라사이트족'이라고 부른다.
얼마전 아는 일본인 친구가 자기 아들이 요코하마 국립대학에 합격했다고 알려왔다. 그래서 나는 도쿄에서 요코하마로 등교하려면 힘들어서 어떡하느냐고 걱정했더니 그 친구의 대답이 아주 명쾌했다.
"걱정할 것 없어, 우선 등록금 내주고 방을 얻어 줬거든, 학생치고는 괜찮은 6만엔짜리 맨션을 얻어줬는데 교통비나 제 용돈은 아르바이트해서 쓰라고 했지. 물론 방세는 우리가 매달 보내주고 제 용돈만 벌어 쓰는 거야. "
아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단다. 왜냐하면 다른 학생들도 대부분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니까.
이렇듯 일본의 대학생들은 대개 집에서 나와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용돈을 조달한다. 또 집에서 학교를 다닌다 해도 일단 대학졸업 후 취직을 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다. 그래서 어떤 사회평론가는 이같은 젊은이들의 `조기분가'가 개방된 성문화를 부채질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학생들이 자취하는 아파트에는 늘 여학생들로 붐빈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밤새도록 옆방에서 들려오는 가뿐 숨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말이 곧잘 농담처럼 떠다니기도 한다.
[내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