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유재순 지금 일본은… 가위가 무서워요
기사입력 2000년 03월 19일 15시 45분
지난 11일 아사히신문에는 `일본부엌에서의 한국의 맛'이라는 타이틀로 우리나라의 비빔밥에 대한 특집기사가 실렸다.
`반찬의 100년'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연재되는데, 요리연구가가 `맛의 일본근대사'를 더듬어 보며 가금씩 세계의 요리도 소개하는 요리전문 칼럼이었다.
마침 이날 칼럼은 요즘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비빔밥에 대한 내용이었다. 약한 불에 돌솥을 얹어 놓고, 은근하게 익혀가며 비빔밥을 만들어야 하는 조리법 설명과 함게 고추장을 얼마나 넣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소개했다.
작년 식료품을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회사 `미츠캉'에서 도쿄 근교에 사는 20∼50대의 주부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아시아 요리에 대한 조사였는데 16가지의 메뉴를 적어 놓고 그 중에서 가장 맛있고 좋아하는 요리를 선택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1위는 태국요리, 2,3위가 한국의 비빔밥과 김치였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베스트 3의 1,2위가 바로 비빔밥과 김치였다는 사실이다. 어른들보다 일본아이들이 매운 한국음식을 더 즐겨먹는다는 증거였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동네마다 늘어나는게 비빔밥 전문식당이다. 나무루(`나물'이라는 발음이 안돼 그렇게 부른다), 기무치(김치), 가루비(갈비), 토오쿠(떡국), 창자(창란젖), 고추장은 이제 일본가정의 생활용어로 아예 정착돼 버렸다. 덕분에 한국사람들이 많이 몰려사는 신주쿠나 아카사카, 우에노의 한국식품점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웬만큼 규모가 큰 수퍼마켓에 가보면 김치와 함께 나물, 고추장이 나란히 놓여 있다. 콩나물, 고사리, 시금치무침을 함께 담은 나물세트는 없어서 못팔 정도로 대인기라고 한다. 덩달아 한국에서 만들어 일본으로 직수입해 온 돌솥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TV와 신문에서 비빔밥과 김치가 건강식품으로 몸에 좋다는 보도를 한 뒤부터 한국음식은 때아닌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치냄새가 난다고 방도 안 빌려주던 일본인들이 지금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음식을 좋아하고 즐겨먹고 있다. 회사사무실들이 밀집돼 있는 오피스타운의 한국식당은 점심시간이 되면 비빔밥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샐러리맨으로 앉을 자리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전 한국을 다녀 온 한 일본인이 이색적인 불평을 해왔다. 일관계로 1년이면 서너번씩 한국을 오가는 비즈니스맨이었는데 한국음식을 먹을 때마다 무섭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더니 손가락으로 뭔가를 써는 흉내를 냈다.
"난 갈비와 김치를 무척 좋아해요, 그래서 한국에 갈 때마다 갈비집에 갑니다. 그런데 얼굴이 예쁘장한 아가씨가 와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말없이 가위를 들고 자르기 시작합니다. 갈비이든 김치이든 모두. 우리 일본인들은 그럴 때마다 어떤 공포심을 느껴요.그래서 나중에는 무서워서 냉면을 못먹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마 싶어 다른 일본인들에게도 물어 봤다. 그들 역시 무서웠다고 말했다. 먹기 편리하도록 손님을 위해 가위로 잘라 준다는 것은 잘 알지만 웬지 무섭다는 일본인들이 의외로 많았다. 특히 무표정한 여종업들이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돌아다니며 가위질을 할 때는 어떤 위화감마저 든다는 일본인도 있었다. 음식을 가위로 잘라 먹는다는 사실을 한국에 가서 처음으로 알았다고.
일본음식은 혀끝으로 느끼는 한국음식과는 달리 눈으로 즐긴다. 우선 시각적으로 음식의 모양과 색깔이 아름다워야 하며 음식이 담긴 그릇도 음식에 맞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맛은 그 다음이다. 그래서 요리평론가들은 일본요리를 가리켜 `눈으로 먹는다'라고 말한다.
또한 칼로 썰고 포크로 찍어 먹는 서양요리와는 달리 일본요리는 젓가락외에는 그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된장국도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서는 그냥 마신다. 음식문화가 이렇다보니 한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가위가 일본인들에게는 흉기처럼 인식되는 모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