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넘나든 금지된 '사이버 사랑'
기사입력 2000년 03월 02일 14시 55분
태평양을 오가는 `금지된 사랑'을 아십니까.
요즘 각 인터넷 채팅방에 불쑥불쑥 미국이나 호주 등 태평양을 건너 들어오는 해외교포와 유학생들이 많아졌다.
특히 이들 중에는 해외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30∼40대 기혼 남녀들까지 가세, 채팅방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
대화명만 보더라도 `미시 오세요, 켐섹(컴퓨터섹스)해드립니다'등 야한 제목들이 줄을 잇고 30∼40대를 위한 채팅방들이 속속 개설되어 있다.
국내-외 구분이 없어 실컷 재미있게 이야기하다 보면 귓속말로 `여기는 미국이에요'라며 `사귀어 보자'는 메시지가 뜨기도 하고 `야한 이야기'를 요구하는 기혼 남녀들도 있다.
채팅을 하다 `눈이 맞은' 기혼 남녀의 경우 낮과 밤이 다른 시차를 극복하며 애절한 E-메일을 나누거나 컴섹까지 즐기는 등 `금지된 사랑'을 키운다고.
얼마전 새벽 3시쯤 야근 중 M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채팅방에 들어갔던 유부남 K씨(33．회사원)는 유학생 남편을 둔 유부녀 Y씨(31．미국 거주)와 우연히 알게 됐다.
이들은 서로 마음을 털어놓다 이내 E-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남모르는 `사랑의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
비록 만나지는 못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두사람은 속내를 드러내는 깊숙한 대화에서 전화데이트, 켐섹까지 나누는 `부부'이상의 관계로 발전,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까지 된 것.
하지만 Y씨가 남편에게 이 사실이 들통나 이들의 `얼굴 없는 연인'관계는 2주만에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서로가 미국이나 한국에서 한번 만나자고 한 약속까지도.
호주 유학생 U씨(27)는 채팅방에서 만난 유부녀 H씨(32)와 애절한 사랑의 E-메일을 서울로 보내고 있다.
U씨는 "채팅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나이나 유부녀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며 "그래서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다 정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들 중에는 귀국때나 해외여행, 출장을 핑계로 만나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고.
국적과 장소, 시간을 초월하고 만나는 인터넷 채팅. 젊은 미혼남녀 네티즌의 전유물이었던 채팅방에 30∼40대 `외로운' 기혼자들이 대륙과 바다를 건너 참가하면서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기철 기자 leek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