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니스] 샐러리맨 새풍속도 '입장 바꿔봐!'
기사입력 2000년 02월 27일 15시 17분
얼마전 이직을 결심한 A 대행사의 L대리(31)는 같은 직장 동료들에게 인사하러 다니기 바쁘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증권회사의 홍보실로 곧 자리를 옮기기 때문이다. 그가 맡은 일은 광고 집행과 제작을 관리하는 광고 담당으로 얼마전까지 그가 온갖 정성을 다해 서비스를 하던 광고주의 입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L대리의 경우, 우리가 흔히 말하던 `을'이 `갑'으로 뒤바뀐 예인데 이같은 현상은 요즘 우리 주위에 쉽게 볼 수 있다.
모경제신문사에서 일하다 사표를 내고 벤처 금융회사의 홍보맨으로 변신한 K과장은 `갑'이 `을'로 바뀐 경우. 기자에서 보도자료를 챙겨주는 위치로 입장이 바뀌었지만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이다. 우선 스톡옵션과 성과급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고 불규칙하게 즐기던 여가생활도 일반 직장인들처럼 정상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최근 능력과 보수에 따른 자리 이동이 보편화되면서 직장인들 사이에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다.
실제로 2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근무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는 자발적 실업률이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률 보다 3배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새 직장에 적응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더 큰 고충은 완전히 뒤바뀐 입장이 돼 일해야 하는 것이다.
한 예를 보면. 광고대행사에서 대기업 홍보실로 근무지를 옮긴 S대리는 옛 동료들에게 조금만 꼼꼼하게 업무처리를 해도 "사정 아는 사람이 더 심하다"는 볼멘 소리를 듣는 반면, 직장 상사로부터는 "친정이라고 너무 봐주는 거 아니야"라는 핀잔을 듣는 괴로운 입장이다.
분사를 통해 협력업체 직원이 된 K씨도 전 직장동료와 사심없는 얘기를 하다가도 하청업자의 서러움을 느낀적이 있다고.
이처럼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하루 아침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더 늘어날 전망.
누구나 한번쯤 겪어야 될 큰 고민이 바로 `이직' 문제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입장이 뒤바뀌어 `역지사지'(易之思之)를 실감케 한다.
[김형주 명예기자．현대증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