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윤호진의 연극세상 '기업과 공연예술의 공생'
기사입력 2000년 02월 27일 15시 17분
사람들이 내게 왜 연극을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지 않고 답한다. `재미있어서'라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 일은 정말 재미있다. 손안의 책 한권(대본)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일정 시간과 상황을 설정해 놓고, 서로의 약속을 지켜 가며 웃고, 우는 몇 시간의 과정은 진정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라 생각된다.
21세기를 맞아 인간의 이런 행위들은 더욱 그 관심과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관심이란 수요와 공급의 증가를 뜻하며, 가치는 시장규모의 가치를 의미한다. 인터넷시대가 오면서 고품질 산업문화가 활성화되고 일찌기 예상치 못했던 사업의 호황으로 돈과 권력의 재분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이미 우리 주위에서 일반화된 현상이다. 빌 게이츠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당시 전세계에 수천개의 직영매장을 운영하던 모 기업의 사장은 미친 짓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빌 게이츠라는 이름은 곧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마찬가지로 돈벌이가 못된다는 연극도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개발로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는 새로운 시대의 무기로 떠올랐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무대예술이 원시적인 작업이라 하여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많은 미래 예측자들은 개인화가 가속화하면 인간은 인간과의 만남과 사교활동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강해지고, 인간이 인간을 다루는 공연예술활동이 극대화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19세기말을 지나 20세기에 들어서서 옛날에 하등하다고 생각했던 분야들이 마침내 각광받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영화, 연극을 한다고 하면 집안 망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여, 창피하다고 생각하여 숨기곤 했다. 물론 나도 집안에서 쫓겨나다시피 하며 연극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실제로 뮤지컬의 사회 주목도는 불과 몇년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다. 뮤지컬 공연의 기획분야나 연출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있고, 연극과에 진학하려는 우수한 젊은이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내가 재직중인 단국대학의 경우 연극영화과 학생들의 성적이 의대 다음으로 높다.
특정 대상의 독특한 관객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고급상품의 폭발적 판매를 유도해야하는 판매전략의 전환기를 맞은 대기업에게 예술공연이 또다른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사회속에서 지친 인간들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부르짖으면서, 진정 인간을 감동시키는 제품이 인정받는 인식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가져온 상품 판매 형식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앞으로 기업은 제품판매에 있어서 다량생산방식에서 소수 고품질생산으로의 변화를 가져감에 있어서 문화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국내나 국외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천년의 예술 창조적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되어 가는 힘과 자본의 중심과 그 흐름을 파악하고 우리 상황에 맞는 적절한 변화를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연극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