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승재 대표 '옷장사하다 이젠 파워 영화인'
기사입력 2000년 02월 24일 14시 30분
`옷장수'에서 `파워 영화인'이 된 우노필름 대표 차승재(40).
그는 인생의 쓴맛을 겪어본 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낙천주의자의 모습이랄까? 그런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그동안 좋은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였지만, 인기절정의 배우나 최고의 감독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제작자인 그를 모르는 관객들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깡패수업'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모텔 선인장' `유령' 그리고 요즘 상영 중인 `플란다스의 개'등이 그가 만든 대표적인 영화다.
이들 작품들은 청춘 영화화법을 가장 현대적인 언어로 승화시켰거나, 새로운 형식실험으로 우리 영화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신뢰도 높은 `우노필림표 영화'로 관객과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언어와 정서의 힘을 실어 완성도 높은 작품에 도전하는 차 대표.
그는 대학 졸업 후 몇년 동안 옷장사를 하며 번돈을 한순간 날려버린 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영화일에 뛰어들었다.
장현수 감독의 `걸어서 하늘까지' 제작부장을 맡으며 충무로에서 영화밥을 먹기 시작했다. 젊은 영화인인 신철 유인택 안동규를 비롯한 충무로 프로듀서 1세대 밑에서 일하며 영화제작을 배웠다. 이후 `백한번째 프로포즈' 프로듀서로 데뷔했으며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너에게 나를 보낸다' 를 거쳐 95년 영화사 우노필름을 세웠다.
우노필름을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10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그는 주먹구구식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영화제작을 위해 프로듀서 시스템을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우노필름이 제작한 영화 대다수가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영화의 경우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확률이 30% 밖에 되지 않는 현실에서 8할이 넘는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질과 양,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그것은 시류와 유행보다는 영화의 완성도에 초점을 맞춘 영화제작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적이면서 직설적인 문법의 작품으로 관객들과 조우한 것이다.
차 대표는 지난해 한 영화잡지사의 조사에서 `21세기 영화계 파워 50인'중 강우석 감독과 함께 앞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무한투자영상조합과 국내 최대 연예매니지먼트사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차 대표는 21세기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막후 스타임에 틀림없다. 새천년의 해가 밝자마자 `플란다스의 개'를 개봉한데 이어 촬영중인 `킬리만자로'를 비롯 잇달아 작품을 제작할 예정이다.
대학시절 시읽기를 좋아했으며 조어능력이 뛰어나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같은 제목을 지어낸 차대표. 영화, 연예계의 파워맨으로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는 그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 근원을 물어보았다.
-영화일에 뛰어들기전 무엇을 했나?
▲대학(한국외국어대 불어과)을 졸업하고 취직보다는 스스로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카페 운영 2년, 서울 반포와 압구정동에서 옷장사를 3년 했어요. 욕심이 과해서 번돈을 모두 잃고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자는 거 였어요.
-데뷔 시절은?
▲지난 90년 장현수 감독의 `걸어서 하늘까지' 제작부장을 맡으면서 시작했어요. 그 당시 조감독으로 활동한 김성수 이현승 김태균 등 친구 영화인들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재미있던 시절이었죠. 재미있게 흘러간 시간이자 공간이었어요.
-95년 `돈을 갖고 튀어라'로 제작자 입문했는데?
▲어려서부터 연출 쪽엔 관심이 없었어요. 제작 쪽에 마음이 끌렸고 연출보다 넓고 큰 세계가 있는 것 같았어요. 친구들이 연출 쪽에 많이 있었는데도 제작이 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한국영화제작자 중 흥행타수가 높은 편인데
▲`비트' `유령' `태양은 없다' `8월의 크리스마스' 등 실패한 영화가 거의 없었어요. 평균 이상 관객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기 그지없죠. 애정을 가지고 만든 `모텔 선인장'은 국내에서 참패했어요. 외국 12개 국가에서 관심을 갖고 작품을 사줘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주로 신인감독들을 등용하는데, 모험아닌가?
▲스타 감독들은 경쟁도 세고, 영화에 대한 생각의 차이도 컸어요. 신인감독들과는 사물에 대한 인식, 세상과 현실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맞았어요. 실험적이고 색다른 생각을 영화로 만드는 재미를 함께 할수 있는 신인감독들이 정서적으로 통했어요.
-제작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모든 영화가 다 소중하고 기억에 남죠.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희비가 교차하죠.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지금 상영 중인 `플란다스의 개'가 그중 기억에 남죠. 제작자인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이에요. 특히 요즘 상영 중인 `플란다스의 개'는 젊은 관객들이 애정을 가지고 극장을 찾아줘 감사해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인 입장에선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죠. 완성도는 예술적인 가치가 균형있고 짜임새있게 구축된 작품이겠죠. 시간이 흘러도 영화속의 감정, 시간, 장면, 스토리, 메시지가 오랫동안 가슴과 머리속에 남아있는 작품이죠. 영화는 관객의 정서를 움직여서 좋은 쪽으로 변화하게 만드는, 인생을 반추하게 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죠.
-책읽기를 즐겨한다는데?
▲요즘은 영화 때문에 책읽는 시간이 적어요. 대학시절 시 읽기를 좋아했죠. 신대철 정현종 황인숙씨의 시를 좋아했죠. 독서의 경우 잡식성이라, `한국복식사'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등도 읽었어요. 요즘엔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많아요. 사는 일, 영화만드는 일, 이 모든 게 다 사람의 일이니까요.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부문은 사람입니다.
-우노 필름 제작영화에 연극배우들을 많이 등용하는데 그 이유는?
▲연극배우들은 오랜동안 훈련을 쌓아 기초가 든든해요.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배우들이라 안심이 되죠. 그리고 요즘엔 특별히 장르 구분을 하는 시대는 아니죠. 영화배우 따로, 탤런트 따로인 시대가 아니에요. 토털 연기자의 시대죠.
-우노필름은 프로듀서 시스템을 정착시켰는데?
▲팀워크를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어 싶었어요. 기획, 시나리오 분석부터 편집까지 하나의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죠. 관객을 우선 생각하고 포장하는 방법도 혁신하고 싶었지요. 아직은 시작단계인지도 몰라요. 완전한 프로듀서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과정인 셈이에요.
-부인 김선아씨가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데?
▲재미있어요. 일과 가정이 분리되어 있다면 영화일이란 게 워낙 시간을 많이 요구하는 것이라 가정에 충실하긴 어려웠을 거에요. 회사에서 틈틈이 같이 놀곤 하죠(웃음). 그러나 같이 영화를 보러 간적은 없는 것 같아요.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 설립은?
▲원맨 시스템으로는 여러가지 역부족인 경우가 많아요. 이젠 매니지먼트도 정착될 때가 됐어요. 스타관리의 체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지요. 8년여간 호형호제하며 지낸 EBM기획의 정훈탁 대표 등과 의기투합, 오는 3월 설립예정입니다. 3년전부터 계획했던 일입니다.
-어떤 배우들이 소속되나?
▲EBM 식구에다 김혜수 전도연씨 등이 참가할 것 같아요. 아직 전모를 밝힐 단계는 아닙니다.
-영화제작과 매니지먼트를 동시 추구, 스타를 독식한다는 소리도 있는데?
▲우노필름에서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법인체입니다. 현재 합병 절차를 밟고 있어요. 좋은 작품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생각이에요. 물론 외부작품도 마찬가지죠. 이미지에 맞는 좋은 배역을 선정하는 데 도움이 될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우노작품과 외부 작품에 대해 균형을 맞출 생각입니다.
-올해 영화제작 계획은?
▲현재 강원도에서 `킬리만자로'를 촬영 중에 있어요. 이어 중국 내륙에서 찍을 `무사'를 비롯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은 간다'등 5편 정도 만들 계획입니다. `무사'는 최소한 30억원, 나머지영화는 13억∼17억원 정도 들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은?
▲새로운 매체를 제공하는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보다 넓고 다양한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어요.
[박용재 문화부장 eastse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