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전쟁소설] 분노의 바다 (121)
기사입력 2000년 02월 16일 15시 22분
"표적진행 침로는 삼백십공(3-1-0)을 향합니다！ 표적이 하강하고 있습니다！ 고도 50m！ 30m…20m…"
신현수 중사의 보고가 이어졌다. 하픈 미사일은 적함에 탐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초저고도로 비행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수면 위를 낮게 스치듯 비행하기 때문에 이런 미사일은 시 스키머(Sea Skimmer)형 대함미사일이라 분류한다.
하픈은 빠른 미사일이 아니다. 속도는 겨우 마하 0.85에 불과하지만 불과 3~5@ 고도로 수면 위를 비행하기 때문에 공격당하는 함정 입장에서는 대응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포술장. 요격 시작하라. 그리고 전탐부서는 하픈이 발사된 지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보고하라. 애스록 착수지점과 비교해야 한다."
요격명령을 하달하는 함장 안병도 대령은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곳에 일본 잠수함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에게는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픈의 발사지점과 애스록의 착수 지점은 일치합니다. 400@ 밖에 차이나지 않습니다."
부장 김홍진 중령이었다. 부장도 함장과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빨리 보고할 수 있었다.
문무대왕함의 소나에는 일본 잠수함이 아직도 포착되지 않았다. 거리가 먼 데다가 문무대왕 주변을 항주하는 다른 함정들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워낙 크기 때문이었다. 이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일본 잠수함 근처에 떨어진 애스록 대잠미사일, 정확히 말하자면 탄두 부분에 탑재됐던 마크 46 경어뢰가 일본잠수함을 제대로 잡아내는 것이었다.
"근데 이상합니다. 하픈의 침로가 엉뚱한 방향입니다. 그 쪽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미사일을 추적하던 신현수 중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딱히 누구를 정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문무대왕함의 전투정보실 요원 중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신현수 중사가 지금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상관들에게 의문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신현수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놈들이 하픈을 우회침로로 발사한거야. 직선 침로를 선택하면 하픈 미사일에서 문무대왕함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걸 개다리 침로라고 부른다구."
신현수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포술장 박동훈 대위였다. 표적을 요격하기 위해 공격절차를 수행하고 있던 박동훈은 바쁜 손길을 멈추지 않은 채로 귀찮은 듯 한 마디를 던졌다.
개다리 침로(Dog leg path), 우스꽝스런 이름이지만 하픈 미사일이 표적을 향해 지그재그로 비행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픈 미사일은 표적이 있는 구역으로 직선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분기점을 여러 군데 설정하여 미사일이 계속 위치를 바꿔 비행하는 것이다.
단순한 직선 침로로 비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방이 요격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만약 표적 전방에 함대공미사일을 탑재한 구축함이 있거나 혹은 하픈이 무시해야 하는 엉뚱한 표적이 있을 경우 이들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표적 근방에 섬이나 육지가 있을 경우 그 사각을 이용해서 상대방이 미리 알아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표적에서 레이더파가 방사되고 있습니다. 파장을 분석 중입니다. Ku-밴드 레이더파장입니다. 하픈의 추적레이더와 동일한 파장입니다."
전파분석을 담당하는 ESM사관 양두식 중위가 보고했다. 하픈 미사일이 스스로 유도레이더를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