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하일성의 세상만사 '야구와 술로 보낸 20년'
기사입력 2000년 01월 13일 14시 18분
나는 그동안 고교야구의 열정에 매료되기도 했고, 프로야구의 태동과 성장도 지켜봤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20년 가까이 마이크를 잡고 있지만 해설을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시청자들의 질책을 받아오면서 보낸 20년이라면 지나친 겸손일까?
주위 사람들로부터 `해설하는데 가장 어려운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많다. 모든 것이 어렵다고 생각해 온 까닭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이글로 주위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겠다.
해설을 하는데 가장 큰 고민거리는 해설의 수준이다. 해설의 수준을 너무 높이면 대중성이 떨어지고, 너무 낮추면 전문성이 결여되기 때문에 중간에 맞추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중계가 끝나고 나면 팬들로부터 종종 편파적이라는 지적을 받곤 하는데 이때마다 참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나로선 방송의 공익성을 들추지 않더라도 편파적으로 방송을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중계가 끝나고 나면 해설이 좋았을 때건, 불만족스러울 때건 한잔을 하게된다. 그래야만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을까'혹은 `흐름을 잘못 파악했구나'하는 후회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된다.
바둑에서도 복기를 하듯이 해설을 마치면 1회부터 경기가 끝날때까지 상황을 하나하나 그려보면서 해설에 대한 검토와 반성을 하게 되는데 만족스럽게 중계한 일이 별로 없다보니 허구한날 술로 마음을 달래게된다.
중계전 3시간은 기록과 싸우고, 경기가 끝난 뒤 3시간은 술과 씨름하다보니 20년 동안 는 것은 술과 스트레스 밖에 없다.
술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술은 정말 나의 좋은 친구이다. 내가 살아온 인생 가운대 술은 슬플때나 기쁠때나 늘 내 곁에서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오랜 세월을 같이 하고 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마셔대던 술이 이젠 맛도 음미하고 분위기도 느껴가면서 먹을 만큼 정말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아왔다.
남들처럼 낚시나 등산같은 별다른 취미가 없는 나로서는 야구 이외에 유일하게 좋아하는 취미가 글자 그대로 `한잔 꺾는 일'이다.
결혼할 때 술을 입에도 못대던 우리 아이엄마 강인숙도 술꾼과 살다보니 이제는 소주 2병을 코끼리 비스킷 먹듯이 마신다.
속없는 친구들이 집에 와서 아내를 술로 한 번 골려 주려다가 오히려 자기네들이 녹다운돼 꼬리를 내리고 도망간 사건이 한두번이 아닐 정도로 이제는 나하고 대적할 만큼 애주가가 됐다. 이러다간 늘그막에 마누라 술시중 들다가 한세상 보내는 것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좋다. 내가 이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마누라님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술)와 매일 티격태격 싸움만 하면 정말 스트레스 받아 못 살았을 거다.
그런데 술이란 친구는 정직하다. 좋은 기분으로 살살 다루면 좋은 친구가 되지만 아무렇게나 막 대하면 아주 골치 아픈 존재가 된다.
술과 오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늘 분수를 지켜야 오랜 세월 우정을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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