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수첩] 딸아! 젊은날엔 연애를 하거라
기사입력 1999년 05월 11일 14시 24분
`공부해라, 착하게 살아라, 훌륭하게 자라라'.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 혹은 희망'(?)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요즘 문인들이 한 잡지에 기고한 아들딸들에게 보내는 다소 파격(?)적인 메시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인기잡지인 월간 `작은 이야기' 5월호에 실린 소설가 김훈, 시인 문정희의 글이 그것. 그동안 귀에 따갑게 들어오던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그 당혹감을 넘어 진솔함이 배어 나온다.
김훈은 말한다.
"사내의 한 생애가 무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돈없이 입만 나불거려서 인의예지며 수신제가를 이룰수 있겠느냐? 부(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인 토대가 무너지면 그위에 세워 놓은 모든 것이 무너진다"(`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한다' 중)
문정희는 말한다.
"딸아, 연애를 해라. 호랑이 눈썹을 빼고도 남을 이 아름다운 나이에 무엇보다 연애를 해라…. 네가 허덕이는 엄마를 돕겠다고 갸륵한 마음으로 기꺼이 설거지를 하거나 분리된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갈때면 나는 속으로 울컥 화를 내곤한다. 딸아 제발 그 따위 착한 딸을 집어쳐라. 그리고 정숙한 학생도 집어쳐라. 너는 네 여학교 교실에 붙어있는 신사임당의 그 우아한 팔자를 행여라도 부러워하거나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테지"(`열정을 다해 연애를 하거라' 중)
이들 문인이 아들과 딸에게 주는 글은 직관적이고 야성적이다. 도전적인 발상이 충격적이다.
물질보다는 정신, 개방적 사랑보다는 요조숙녀를 원하는 기존의 부모들이 허울적이고 선비적이고 주입식으로 `공부해라, 일해라, 성공해라"라고 말하는 것하고 다르다.
가정의 달, 권위적인 위치에서 자식들을 나약하게 바라보는 부모들이 이들의 생각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한번쯤 음미해 볼만한 글귀들이다.
[박용재 문화팀장]
